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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6. 23:40 성경이야기/설교문



여러분은 기적을 믿습니까? 그러면 기적은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저도 기적은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도라고 하면 우리가 믿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로교의 교리 중에는 예정론(pre-destination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가게 되어 있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이 예정론이 맞으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들은 우연입니까? 필연입니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기적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러분이 원하시는 혹은 기대 하시는 신앙생활이란 것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배고픈 것을 아신 주님께서 장정만 오천명이 되는 사람들을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먹이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까지찾아 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you are looking for me, not because you saw miraculous signs but because you ate the loaves and had your fill.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표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배부름을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배부름, 즉 세상적인 성공입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돌아보면,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배부름이 아니라 표적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동방박사들이 베들에헴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찾아 오는 장면은 바로 표적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되고 있는지를 알려 주시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상상해서 이야기로 한다면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동방의 박사 한 사람이 어느날 이상한 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동료 박사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들이 그 별을 나름대로 연구하며 알게 되는 것은 그 별이 유대에 왕이 탄생한다는 표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나름대로의 예물을 가지고 새로나신 왕에게 경배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자기 나라의 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경배해야 하는지 성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별이 움직이고 있었고 박사들은 그 별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먼 발치에 예루살렘이 보이자 박사들은 아 저곳에 왕이 나신 곳인가보다라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왕의 나신 곳을 물어 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별이 언제, 왜 없어졌는지 그 이유를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안에서 왕의 나신 곳이 베들레헴이란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서니 그곳에 별이 다시 보입니다. 그리고 그길로 베들에헴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한 후, 예물을 드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저들의 꿈 속에서 주의 천사는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을 지시하고 박사들은 그 말에 순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먼저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바로 표적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표적-sign)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없느냐

and in the morning, 'Today it will be stormy, for the sky is red and overcast.' You know how to interpret the appearance of the sky, but you cannot interpret the signs of the times.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해야 하는 것은, 왜 표적을 보지 못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미국땅에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을 보십니까?

지난 6 28일에 미국 역사상 중대한 대법원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일명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전국민 의료보험입니다. 그런데 그 통과 뒤에 보여지는 한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2009년에 통과된 법이 이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9년에 통과된 법은, 2010 3 21에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3년의 준비 단계를 거쳐 내년(2013) 3 21일부터 시행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험이라고 하면 보험료를 내면 보험혜택이 있고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혜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보험법은 이와는 다릅니다. 보혐료를 내지 않으면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2013년 에 보혐에 가입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95불 정도의 벌금을 내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2016년에는 695정도의 벌금을 내셔야합니다. 그 후, 2017년부터는 보험을 갖지 않는 사람은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 체포 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못 믿겠으면 인터넷에서 검색 해 보십시오. 이게 보험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보험이 없으면 벌금을 내는 사회, 그리고 만약 보험이 있기 위해서 칩을 몸에 심어야 하는 사회.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국이라면 지금 우리는 무슨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 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이 오셔야 할 때입니다. 아니면 이제 적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천기 속에서 왕의 오심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표적을 보지 못해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so that, "'they may be ever seeing but never perceiving, and ever hearing but never understanding; otherwise they might turn and be forgiven!'"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마지막 때의 표적은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모르니까 성경이 말하고 있는 표적을 모르더란 말씀입니다.

 

저는 오는 동방박사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표적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찾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이 시작 되고 있는 마태복음 2장의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보면, 박사들이 별을 잃어 버렸습니다. 별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자 저들이 찾아 간 곳은 예루살렘성이었습니다.

 

2:1

헤롯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After Jesus was born in Bethlehem in Judea, during the time of King Herod, Magi from the east came to Jerusalem

 

저들은 왜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를 예루살렘에서 찾았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왕으로 나셨으니까…” 왕이기에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나셨을 것이라 생각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을 따라간다고 하다가도 우리 생각에 끌려 표적과 상관 없는 길을 간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삶 속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이 네 후손이라고 하셨는데, 그 뜻을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 했기에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표적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성급함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표적에서 눈을 멀게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다시 표적이 되는 별을 보게 된 것이 언제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되면서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전환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표적을 보게 될까요?

세상의 성공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결단이 있을 때입니다. 예루살렘이란 현실을 지배하는 왕의 성에서 돌아서서 작고 보잘 것 없는 베들레헴, 그러나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발을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신다는 말씀입니다.

 

바라기는 이자리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세상이 성공이라고 하는 자리 예루살렘에서 돌아서서 주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표적이 이끄시는 베들레헴을 향해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십시오. 세상적인 것을 바라보다 동방박사들처럼 하나님이 주신 표적을 잃지 마시고 주님을 만나는데 성공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앞에서 (예물)을 드리십시오.  

 

오늘 동방박사의 예수님을 찾아오는 여정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대단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그 길고 긴 여정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경배입니다. 산 넘고 물 건너 그 보배를 가지고 오는 이유는 단 한가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 왜 이 자리에 계십니까? 예배는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나의 삶에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배는 무엇입니까? 내가 위로 받는 자리입니까? 물론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여러분을 위로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로는 여러분들이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두 기적을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적은 수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함으로 기적을 체험 합니다. 믿음의 고백 없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오히려 그리스도 앞으로 나가는 자들의 장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예배 드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교회 건물이 좋아도 그곳은 주님이 분노하시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더난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1)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어디서)”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입니다.

 

오늘 말씀을 돌아 보기 원합니다.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On coming to the house, they saw the child with his mother Mary, and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him. Then they opened their treasures and presented him with gifts of gold and of incense and of myrrh.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경배 했습니다. 이것이 주는 의미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화려한 성전을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첫번 경배를 받은 곳은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초라한 마굿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18:20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아무리 거룩한 순서에 따라 유창한 기도를 드렸다고 해도, 설혹 그곳에서 기적이 나타났다고 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주님이 계시지 않다면 말입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주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지난 주, 저는 매우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갈라진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 자신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저들을 치료 하기 원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화려한 성전은 아니지만, 이곳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만져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가?하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초라한 예배가 하나님 없는 화려한 예배보다 좋습니다. 오늘 박사들은 초라한 곳에서 주님이 계셨기에 가장 화려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같은 은혜가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물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반드시 바쳐지는 예물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목사님들은 여기서 황금, 유향, 몰약의 사용에 대해 상징적인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하나님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하는 그 마음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은 많고 적음을 가지고 말씀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은 좋고 나쁜 것을 가지고 말씀 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물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그 예물 속에 마음과 정성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가지고 온 것은 당시 값 비싸고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그런 것을가지고 다니다보면 강도를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주님 앞에 드릴 것을 준비하는 그 마음을 생각 해보십시오.

이 시간 저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크고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이삭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물의 중요성은 그고 좋은 것 이전에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돈이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요, 또한 하나님이 인정 하시는 삶으로 드려지는 예물 되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을 만난 자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모습이 어떤지아십니까?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봅니다.

 

2: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He sent them to Bethlehem and said, "Go and make a careful search for the child. As soon as you find him, report to me, so that I too may go and worship him."

 

이 말은 헤롯왕이 동방 박사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방박사들의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And having been warned in a dream not to go back to Herod, they returned to their country by another route.

 

당시 헤롯은 로마의 세력을 뒤에 업은 세상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그런 헤롯이 박사들에게 자기에게 와서 고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다른 길로 간 것이 아닙니다. 헤롯을 속이면서까지 헤롯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2:16a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

When Herod realized that he had been outwitted by the Magi, ….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우리 중에 누군가는 이렇게 저에게 말씀 하실 것입니다. 나도 동방박사들처럼 들을 수 있으면 따를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모두 이렇게 생각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과연 기적을 체험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100%믿고 따를 것이라 생각 되십니까?

 

16: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The Israelites said to them, "If only we had died by the LORD'S hand in Egypt! There we sat around pots of meat and ate all the food we wanted, but you have brought us out into this desert to starve this entire assembly to death."

 

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But the people were thirsty for water there, and they grumbled against Moses. They said, "Why did you bring us up out of Egypt to make us and our children and livestock die of thirst?"

 

이 두 구절이 어떤 상황을 설명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생홀 속에서 먹을 것을 불평하고 마실 것을 불평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불평합니까?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불평합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불평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시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인간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기적을 체험하면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되십니까? 여러분은 그럴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5:17

저희가 예수께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Then the people began to plead with Jesus to leave their region.

 

이 말씀이 언제 이루어 진일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게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셨을 때, 무덤에서 살고 있던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간구 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주님을 떠나달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가능 하더라구요. 주어진 우리 현실 앞에서 우리는 주님을 포기 하더라는 말씀입니다. 한 청년이 주님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영생얻는 방법을 묻습니다. 주님은 재물을 팔아 가낞나 자들에게 주고 나를 다르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9:22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When the young man heard this, he went away sad, because he had great wealth.

 

이것이 오늘 우리의 삶 아닙니까? 내려놓지 못하고 포기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오늘우리의 믿음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믿음이라면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기억 해야 할 것입니다.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Whoever has my commands and obeys them, he is the one who loves me. He who loves me will be loved by my Father, and I too will love him and show myself to him."

 

여러분은 주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분명한 삶의 표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표적을 보면서 만약 우리의 생각이 앞서거나 선입견이 있다면 그 표적은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적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는 어디에서보다 중요한 것이 누구에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마굿간도 아름다운 예배당이 될 수 있습니다. 예배 드림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예물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받으시기 원하는 예물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정성과 우리의 삶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입니다. 이제 새해를 기대하며 이렇게 우리 모두 기도 하기 원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을 따라 인도 받으며 살기 원합니다. 어디서 예배 드리던지 하나님께 예배하고 내 삶을 드리기 원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으며 말씀 따라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2014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주시는 표적을 따라 사는 성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성도, 자신을 내어 드리는 성도 그리고 말씀을 읽으며 말씀을 따라사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posted by no turning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