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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4. 19:46 나를 위한 글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의 삶을 돌아 보는 경험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경험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황에서 겪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 지금까지 뭐 헸니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1985년 전도사로 시작한 사역의 길은 한 번도 쉬워 본적이 없습니다. 그 어느 순간에도 경제적인 자립을 해 본적도 없습니다. 항상 부족했습니다. 사역은 즐거웠지만, 경제적인 이유에서 항상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후, 사역을 내려 놓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물론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부사역자로 왔는데 교인들과 힘을 합쳐 저를 밀어내는 경험도 했습니다. 다른 교회의 목사님이 교회를 합치자고 해서 했다가 교인들을 빼돌리는 일도 경험 했습니다. 작은 교회에 부임 했더니 2/3의 교인이 적절하지 못한 관계로 교회와 연관을 맺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주의 교회로 부임해 갔습니다. 15명이 모인 교회가 150명 출석교회로 성장하자 15명의 교인들이 교회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왔습니다. 새로이 개척(교회를 쪼개는)을 한다고 했지만, 그냥 몇 년을 버티다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교회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 했습니다. 다시 몇몇 가정들이 찾아 오기 시작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내는 동안 한 순간도 경제적으로 안정 됨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중에 저는 쓰러져서 13일동안 혼수상태를 경험 하기도 했습니다. 2년 전 제 아내는 암 수술을 하기도 했구요.

2014년 저는 제가 살던 곳을 떠나 A도시로 이사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을 하다가 함께 일하던 미국 사람과 충돌이 생기면서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뒤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풀지 못하고 너그럽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까지 나 스스로를 정말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제 본색을 스스로 알게 되면서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어쨌던 A도시에서 목회자가 아닌 성도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가장 힘든 것은 주일에 교회를 찾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니 사역을 할 수 있는 은혜가 다시 그리워 졌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다시 경험 하기를 원해서 작년 7월부터 하나님에게 기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사역의 길을 다시 열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재정의 문제는 여전히 제겐 딜레마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숙제와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동시에 사역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수입을 스스로 해결 해야 하는 나 자신의 문제 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사역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에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개척한지 불과 몇 달 만에 성도들이 100명이 넘게 급성장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에 대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그렇게 교회를 성장 시키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입니다. 제 능력은 사역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고 그 분의 능력은 수개월 만에 100명 넘게 끌어 모을 수 있는 능력.

그럼에도 저는 사역을 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잘 해도 못해도 하나님이 하게 하신 만큼 하는 것이 제가 이루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 합니다.

네가 이렇게 실패담을 이곳에 기록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나는 실패한 사람일지언정 실패한 삶을 산 것은 아니라는 마음의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아침에 이렇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봅니다. 내게 성령 부어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실패한 사람일지언정 실패한 삶으로 마감하지 않게 하소서. 

posted by no turning back
2015. 9. 28. 10:09 나를 위한 글




종종 글을 읽다가 글쓴 이들의 입장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평가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문제는 해결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과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부모와 자녀들이 가지고 말씀이라고 겨룬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자녀들은 부모에게 "나를 노엽게 하시면 성경적으로 안 되는 겁니다."라고 말할 때, "아이들아 성경 말씀에 부모에게 순종 하라고 하지 않았니?"라고 한다면 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성도들이 목회자를 평가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성도들을 평가하는 경우도 봅니다. 물론 다 맞는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를 보면 성도가 불쌍하고 성도를 보면 목회자가 불쌍 하네요. 
그래서 혼자 생각 한 것은, "다른 사람 보지 말고 나나 열심히 살자!"입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 드릴께요. 성도님들은 좋은 목회자 만나십시오. 목회자들은 좋은 성도님들을 만나십시오. 
마지막 때에 필요한 은사는 사랑의 은사만큼이나 영분별의 은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추석에 마음에 싸한 것이 있어서 이렇게 넋두리합니다. 
Merry 추석


posted by no turning back
2015. 7. 12. 17:10 나를 위한 글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영화 제목 중에 "버켓리스트"가 있다. 죽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기록 해 놓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버켓리스트를 작성 해 보았다 .그리고 단 한가지의 버켓 리스트를 알게 되었다. "목회"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구하는 중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억지로 한국에 다녀 왔다. 분명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목회이기도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목회이기도 한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다른 일들은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역의 한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나만큼의 열정을 가진 사람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사역을 하려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주저하게 된다. 

기도 한다. 

믿는다고 부르 짖는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시기를 다시 한 번 기도 하며 기대 해 본다. 

기다리다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그날 나는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리라.

posted by no turning back
2014. 3. 2. 17:09 나를 위한 글



 

동계 올림픽 중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던 일 중의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김연아선수가 선수로서는 마지막 인터뷰라고 할 수 있는 인터뷰자리에서 자신을 메달리스트가 아닌 스케이트선수 김연아로 기억 해 주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물론 수많은 선수들이 메달을 땄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그런 중에 김연아선수는 한국에서는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피겨스케이트부분에 분명한 한 획을 그은 선수였기에 그의 소박한 꿈은 다소 의외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라는 선수라고 하는 말 속에 정말 많은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안에서는 편파판정까지도 경기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모양새입니다. 아이들이 운동 할 때, 경기 참관을 위해서 가면 심판의 편파판정이 생각보다 거셉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하는 경기임에도 경찰이 동원되어 분위기를 억지로 진정 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는 김연아선수의 모습 속에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자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이로운 대범함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김연아선수는 그저 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 해 달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 했기에 결과가 어떠하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과연 나는 가지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습니다. 나는 사역에 최선을 다 했기에 그 결과를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하는 부분입니다.

대 도시를 버리고 내쉬빌에 오면서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사역의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고 원망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정 하고 받아들이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기에 김연아 선수의 한 마디는 정말 부럽습니다. 제가 이 말을 패러디한다면 저란 목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 해 주시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죽을 만큼의 사역을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답답함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답답함 너머의 이 부러움은 무엇일까요?김연아 선수보다 오래 살았지만, 이제야 그녀가 하는 말저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럽습니다. 이제 저도 저라는...”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no turning back
2012. 12. 27. 01:53 나를 위한 글


과연 믿음이 무엇이냐고 정의 하라면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과연 오늘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믿음의모습일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 흔히 말하는 축복, 을 얻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정말 신앙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은 변질 되어 있고 목회자들은 잘못 된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성도와 목회자 모두가 현 상황에 대한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성경적인 증거를 댈 실력은 없다. 그러나 하늘늘 보며 날씨를 예측 하듯, 현 시대를 보면 신앙적 일기가 어덯게 될지 느낀다. 그래서 아프다.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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