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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4. 23:58 성경이야기/설교문




신앙생활의 시작은 얼핏 종교생활로 시작 하겠지만, 결과는 단순한 종교생활 이상의 자리까지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만 다니면서 정작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는 배고파서 햄버거 먹으러 맥도날드에 들어갔다가 화장실에 가서 손만 씻고 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아니면 자기도 하바드 갔다고 하기에 전공이 뭐냐고 물으니, 관광으로 갔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신앙생활은 제대로 신앙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 하신 , 예루살렘의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해도 최소한 베들레헴일 ,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면 장소까지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4-6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유대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When he had called together all the people'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he asked them where the Christ was to be born. "In Bethlehem in Judea," they replied, "for this is what the prophet has written: "'But you, Bethlehem, in the land of Judah, are by no means least among the rulers of Judah; for out of you will come a ruler who will be the shepherd of my people Israel.'"

 

그러나 저들은 예수님이 계신곳 혹은 태어난 곳을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므온 안나입니다.

당시 얼마든지 예수님을 만날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 했습니다. 그런 중에 끝까지 예수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고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을 조명 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있다 하시는 깨달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 속에서 예수님 만나는 법을 깨달으시고, 예수님을 만나기로 결단하는 우리 베델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을 만날 있을까요?

 

 

첫째로, 의로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살펴보면,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위에 계시더라 

Now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called Simeon, who was righteous and devout. He was waiting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upon him.

 

누가는 시므온이란 사람을 이야기 하면서, 그가 의로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3:10

기록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여기 로마서의 의인과 누가복음의 의인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 보다 하나님의 눈에 인정 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 하시는 믿음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그리고 믿음의 행함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바울사도는 디도에게 믿음을 이렇게 설명 합니다.

 

1:8-9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Rather he must be hospitable, one who loves what is good, who is self-controlled, upright, holy and disciplined. He must hold firmly to the trustworthy message as it has been taught, so that he an encourage others by sound doctrine and refute those who oppose it.

 

여기서 의롭다는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와 동일어입니다. 그렇게 , 분명히 주님을 혹은 예수님을 만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대답은 간단합니다. 믿음이 있어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과신 하는 같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항상 좋은 상태의 믿음이라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한번 얻은 구원은 빼앗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 조심성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같습니다. 그러면 다시 이렇게 길문 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야고보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우리에게 이런 도전에 대해 말합니다.

 

2: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But someone will say, "You have faith; I have deeds." Show me your faith without deeds, and I will show you my faith by what I do.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소개 되고 있는 다른 사람, 안나라는 여선지자가 있습니다. 여기서 안나는 우리에게 행하는 믿음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and then was a widow until she was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but worshiped night and day, fasting and praying.

 

안나라는 여선지자는 어떻게 살아왔다고 합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금식하며 기도 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 우리 자신을 돌아 보기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이제는 살만하니까, 신앙생활도 편하십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도전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느 정도 혹은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

 

과거 제가 학창시절 신앙생활을 때에는, 은혜 체험을 나누는 것이 신앙인들 가운데서 가장 화제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은혜체험을 이야기하면 반응은 광신적 신앙생활은 하지 말라 답으로 돌아 오는 경우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대해 첫번째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믿음으로 사는자믿음으로 행하는 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지 않는 ”, “기도 하는 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신앙인입니까?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만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정말 주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 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우리 오이코스 가족들은 모두 하나님이 인정 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셔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껍데기가 아닌 정말 체험있는 신앙인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경건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경건과 의로운 삶을 구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굳이 경건과 의를 구별한다면, 의가 믿음라고 , 경건은 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지만, 삶이 믿음이 있는 삶을 , 예수님을 만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경건이라는 단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경건이란 말은 헬라어의 eujlabhv"라는 단어인데, 사실 뜻은, “ 붙잡다, 종교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삶이 하나님을 붙잡은 삶이고, 다른 사람보기에 삶이 종교적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생각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욕을 먹을까? 삶이 경건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밭잡지 못해서 입니다. 보여지는 모습이 종교적이지 못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마디로 삶이 믿는자 답지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사도 바울의 말씀,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만행이란 책을 현각스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인으로 하바드를 졸업한 , 불교에 심취해서 한국으로 분입니다. 지난 2008 한국을 떠나, 지금은 독일에서 작은 사찰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가 지난 201 11 G20회담이 한국에서 열렸을 , “세계종교 지도자대회에서 다음의 말을 했습니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평화 대신 전쟁, 갈등과 환경만 파괴하는 종교는 이제 버려야 한다. 2010년이 되었는데 인간이 여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저는 글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철학,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깨달음으로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깨달음은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것을 우리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신의 도움조차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편리함은 더해가는데, 인간성은 점점 상실되고 있습니다. 배움은 더해가는데 세상은 점점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여러분은 인간의 윤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있다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의 원칙을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했다면, 예수는 원수까지도 사랑해라라고 분명히 명령어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믿는 자들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을 헛된 소리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경건하다는 말은 붙잡은 뜻이라면, 오늘 경건한 신앙인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붙잡고 살아감으로 우리가 경건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경건에 대해 주의 해야 것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s power. Have nothing to do with them.

 

말씀에서 우리가 있는 것은, 경건에는 모양 있고 다른 한가지, ‘능력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 모양 그런대로 찾아가는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능력' 상실한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윤리적 수준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공부 , 드렸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믿지 않는 사람도 세상의 법과 윤리의 법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당연히 세상의 법보다, 윤리의 법보다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 있다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법과 윤리적 법을 포함 하는 법인 것입니다. 당연히 세상법을 지켜야 합니다. 윤리적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빛처럼 사는 삶입니다. 소금처럼 사는 삶입니다. 경건함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딤전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For physical training is of some value, but godliness has value for all things, holding promise for both the present life and the life to come.

 

우리가 생각 , 경건은 그저 경건 자체인 것으로 생각 있지만,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경건이 분명한 삶의 이익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경건하게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아니 신앙인 답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야고보사도는 우리에게 경건의 모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26-27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난중에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If anyone considers himself religious and yet does not keep a tight rein on his tongue, he deceives himself and his religion is worthless. Religion that God our Father accepts as pure and faultless is this: to look after orphans and widows in their distress and to keep oneself from being polluted by the world.

 

야고보사도가 말하고 있는 경건은 거룩해 보이는 어떤 모양이 있다기 보다는 우리 자체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나타나는 것이라 있습니다. 하지만, 경건은 어느날 그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선수들은 종종 슬럼프를 경험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김신욱이란 축구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늘 잘할 수는 없다.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왜 이럴까 고민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야한다. 전날 술 마시고 푸념하면서도 풀리는 슬럼프는 없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길은 노력뿐이다

신앙의 슬럼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주님은 만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경건해야 한다면 경건해 지는 역시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경건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연습하는 것입니다. 경건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이제 주만 지나면 2014 새해가 시작 됩니다. 새해를 맞이 하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경건에 이를 것을 계획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경건에 이를 , 우리는 주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있을 것입니다. 경건한 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성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받은 자가 예수님을 만날 수있습니다 .

 

성령을 말하면, 종종 성령에 대해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는 같습니다. 성령은 여러가지 일을 우리를 위해 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보면,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특별하게 하시는 일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Moved by the Spirit, he went into the temple courts.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do for him what the custom of the Law required,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만날 있도록 인도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이 어떻게 행동 하였습니까? 성경에 기록 것을 봅니다.  

 

2:28-32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Simeon took him in his arms and praised God, saying: "Sovereign Lord, as you have promised, you now dismiss your servant in peace.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sight of all people,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for glory to your people Israel."

 

말씀을 보면 시므온은 입을 벌려 예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이 이유를 알게 합니다. 이유는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When the Counselor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goes out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about me.

 

성령 충만한 자가 예수를 알아보고 전할 있습니다. 여선지자 안나는 예수님을 대한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2:38

마침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Coming up to them at that very moment, she gave thanks to God and spoke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looking forward to the redemption of Jerusalem.

 

성령 받기 전에는 성경을 알아도 말씀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말씀을 기억 하십니까?

 

5:18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오늘 기독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상실하고 신앙생활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은 벙어리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윤리적 삶에 있어서도 보다 높은 수준의 삶을 살것을 요구합니다. 런데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의 삶이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 보다 엉망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이 성적 타락에 빠지고, 성도간에 불륜의 상황이 생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 같으면 이런 교회를 다니고 싶으십니까? 이것이 교회입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변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방법이 무엇입니까? 성령충만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아신다면, 저를 통해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바로 성령충만을 입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령의 이끄심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체험을 하실 없습니다. 이런 은혜 체험이 없으면 우리는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껍데기만 남을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 드리는 내용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정작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던 제사장들이 말씀을 몰라서 베들레헴에 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 

 

말씀 정리합니다.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중에 시므온과 안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있었습니까? 믿음이 있었습니다. 삶이 경건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저들의 삶이 다른 사람보기에 올바랐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1)     믿음을 돌아보아 믿음을 견고하게 하십시오.

2)     삶을 돌아 보아 경건함을 갖추시고, 경건함의 능력을 나타내십시오.

3)     성령충만함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으로, 삶으로 그리고 성령충만으로 하나님의 독생자, 2000전에 땅에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믿음 충만, 성령충만한 성도 되어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오이코스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posted by no turning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