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교회는, 넓은 의미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쉽게 가족인 것이지요. 지금은 가족의 개념도 많이 변하고 있지만, 가족은 “동고동락”의 대명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오늘의 교회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삶의 이유로 자녀 출산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청년에게 “결혼 언제 할꺼니?”라고 물었을 때. 청년의 대답은 “내가 힘들게 벌어서 왜 다른 여자에게 다 써요?”라는 또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은 가족의 개념이 이전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교회는 확장된 가족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만약 가족이 아니라면 우리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 미음, 이해 못함, 원망등의 우리의 좋지 못한 감정을 다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 동시에 가족으로 되기 위해서 저는 한가지 말씀을 기억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해산의 수고를 통해 얻은 아들…”
저는 과거에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감정 놀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이는 마치 사랑이 “감정” 이상의 것이어야 함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 합니다.
성경에 고린도전서 13장4절 이하에서 사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저는 여기에 사랑의 정의가 있다고 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참으며”로 이어져 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견디느니라”로 귀결 지어지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가정은 자켜져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의 부산물처럼 정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참고, 참고 견디는 것이라기 보다 그저 감정으로 만들었다가 감정으로 부수는 것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회는 바로 제가 정의 하는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족과같은 개념의 공동체 입니다. 사도 뱌울은 우리에게 일만의 스승이 있지만, 아비는 많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회 안에서의 가족의 모습은 적어도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도 어른이 있어야 하고 망나니 일지라도 자식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분위기가 있을 수 있다면 저는 그런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교회는 가정이기에 목사일지라도 교회 안의 어른들에 비하면 어릴 수 있습니다. 세상적 경험으로 통해서 봐도 어린 아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목사는 어린 것으로 말미암아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노력 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성도 중에 어른 되신 분들은 교회의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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