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Io5uojNtog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 삶의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제 삶 속에서, 제 경우엔 제가 생각하고 원했던 것보다 훨씬 자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마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최선을 다해 순종하려 했고, 하나님이 제게 주신 뜻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제가 원하던 결과가 아닐 때마다 실망하고 낙심하고 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를 쉼 없이 고민 했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해 본적 있으신가요?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줄 알았는데 바라고 원하고 기도하던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서 고민 해 보신적 있으신가요? 저 처럼?
제가 출애굽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여정을 살피면서 많은 순간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제 삶과 동일한 고민의 흔적을 이스라엘에게서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하고, 더욱 실망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 하면서, 제 마음에 가장 많이 부르게 되었던 찬송은 안이숙 사모님이 가사를 쓰신 “내일일은 난 몰라요!” 였습니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평탄한 길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과연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리고 저를 꼭 그런 길로 인도 하실까요?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문에서 다시 찾아봅니다.
[출 19:1-출 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출 16:1-출 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여기서 우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90일, 3개월 정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광야에 도착 했던 시간을 기준으로 45일이 지난 시점입니다.
애굽 군대를 수장 시켰던 홍해를 건넌 시점에서 보면, 그 후에 마라에 도착 해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일을 경험 했습니다. 엘림을 거쳐 엘림과 시내산 중간쯤에 있는 신광야에서 먹을 것으로 원망하다가 만나와 메추라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신광야를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신 르비딤에 도착 했을 때,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경험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모세는 산에서 폰을 들어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나가 전쟁을 하게 되고 이기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스라엘이 도착한 곳은 “시내 광야” 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이런 저런 말씀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처럼 말씀 하십니다.
[출 20:1-출 20:2]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저는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바람은 무었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무엇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여호와 이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 12:2-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리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와서 가나안으로 향할 때,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신 7:7-신 7:8]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다만 이스라엘을 사랑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하나님이 출애굽의 과정에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보면 됩니다.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마라에서 물이 마땅치 않을 때, 물의 문제를 해결 해 주셨습니다. 신광야에서 먹을 것으로 말미암은 불평 가운데서도 음식 문제를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해결해 주셨고, 르비딤에서 물이 없다고 할 때에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 해주셨습니다. 이어지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하나님은 직접 싸우시며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금 말씀하시는 것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복음 3:16에 잘 나카나 있습니다.
[요 3:16-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갈 2:20-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버리신 증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두번째, 아말렉은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성경 속에서 아말렉은 끊임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아말렉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말렉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 25:17-18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말렉의 특징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에 주저함이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책임도 있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이스라엘 자신이 믿지 않았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항상 스스로 이스라엘에게 “너의 여호와”임을 알리시려 하셨습니다.
출 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신들이 경험하는 기적의 한 부분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없기에 더욱 이스라엘을 쉽게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음이 없는”이란 의미로 말씀을 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하던 중, 몇가지 마음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끔은 교회 안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시는 분들 중에도 그런 상황을 만드시는 것을 봅니다. 물론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구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믿음이 없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함부로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들로 말미암아 오늘의 교회들은 불신자들의 동네북으로 전락해 버린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아말렉”을 우리 주변에도, 교회 안에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말렉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 하시는가?하는 것입니다.
천하에 기억도 못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대대로 싸우겠다고 하십니다.
출 17: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기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아말렉은 하나님이 멸하셔서 기억도 못하게 하겠다. 그리고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합니다. 이는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들”과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신앙”과 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신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이 구절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 해 보는 것은, 아말렉의 공격은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 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훈련의 과정으로 만드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닫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두려운 분임을 조금씩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은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 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시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솔로몬은 지혜서인 잠언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잠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우리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말렉의 공격은 우리가 힘든 순간일 수 있습니다. 겨우 한숨 돌린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지키시고 도우시며, 우리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고백 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이 제게 더욱 힘이 되는 이유는 여전히 이스라엘은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수준으로 믿음이 자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전쟁터에 서서 불신자 아말렉을 만나 사움을 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오느 ㄹ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위해 사우리니 너는 나를 믿으라! 지금이 사탄이 기다리던 내가 약해지는 순간이라고 해도 반드시 하나님은 이 싸움에 나를 위해 승리하게 하심을 믿고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불신앙”과 싸워 이기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르비딤에 진을 친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이 과연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일까요?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스라엘은 현재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르비딤에 진을 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것입닏. 그런데 아말렉이 그 찰나에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는 사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보기에는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계심을 보게 하십니다.
오늘 성경으로 돌아가서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는 부분입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재미난 것은 여호수아의 반응입니다. 모세가 너는 나가서 싸워라 나는 산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올라가 서리라! 했으면,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떻게요?”라고 물을법한데 여호수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호수아의 행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과연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게다가 여호수아가 백성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겁니다.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야 한다. 싸움에 나갈 사람은 알아서 자원해 주기 바란다.” 그 때, 선뜻 나갈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25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그들이 마음이 수동적으로 바뀐 사람들이었습니다. 소극적입니다. 싸움이라곤 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슴니다. 수중에는 무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가서 싸우라니요? 하지만, 여호수아는 아무말 없이 순종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집니다. 올린 손이 피곤해서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피곤해도 손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밀리기 때문입니다. 이 때,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수 있도록 돕는 “아론 과 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손을 받쳐줌으로 아말렉을 물리치게 됩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말렉과의 싸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을 향한 한가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하나님의 싸움을 감당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곤해서 팔이 내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돕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혼자할 수 있는 기도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기도가 더 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기도 하는 자에게 힘을 북돋아 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말렉을 물리친 그 순간. 여기에 마지막 점을 찍습니다.
출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싸움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점을 여호수아가 찍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의 기쁨을 가져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놓고 기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응답을 맏고 문제가 해결 되었을 때, 마치 우리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마음 뿌듯한 승리를 만끽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움은 항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의 즐거움은 이스라엘이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한 사람이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이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창 32:26-27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삶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에게 매달립니다.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응답을 받습닙다.
창 32:28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능히 이길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자에게 져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생각이 머무는 자리는 싸움은 하나님이 하시고 승리는 내것으로 남겨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그 때”는 내 믿음이 흔들릴 때, 내 속에 주어진 현실로 인해 불평이 생겨날 때, 내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하심이 불편할 때, 그 때 아말렉과 같이 하나님을 무서워 하지 않는 자들이 공격해 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 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현실을 앞세워 나를 공격하는 그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 참 승리임을 말씀 하십니다.
우리의 싸움은 칼로 싸유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싸워주십니다. 우리는 칼을 들고 하나님의 승리를 나의 승리라고 하며 하나님게 영광돌리고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여러분!
나의 연약함을 큼타 현실을 가장한 사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악의 공격에 믿음으로 맞서고, 하나님이 대신 싸워 승리함을 믿고 오늘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승리의 잔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그리고 삶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또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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