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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 18:04 성경이야기/설교문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바르게 정의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누구신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하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의 하는 혹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2

때에 너희는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여러분은 말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말씀을 이해 하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 혹은 믿어야 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있을 것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자가 누군가?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누구입니까? 악한 사탄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는 , 사탄의 특징은 순종(disobedient)”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악한 영이 세상을 그리고 우리를 다스리고 다스리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공중의 권세를 잡은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중이란 우리 말보다 영어의 “air”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기라고 우리 말로 표현 한다면, 공기의 특징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성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우리를 유혹하는 악한 영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조정함으로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던 장면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4:8-9

마귀가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Again, the devil took him to a very high mountain and showed him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and their splendor. (9)"All this I will give you," he said, "if you will bow down and worship me."

 

세상이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예수님에게 무엇이라고 속삭입니까?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속이려하던 이런 사탄의 속임수에 오늘 우리는 속고 있지 않습니까?

에스겔 선지에게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보면 이렇습니다.

 

14:3

인자야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Son of man, these men have set up idols in their hearts and put wicked stumbling blocks before their faces. Should I let them inquire of me at all?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랬을까요? 우상을 마음에 들였을까요? 성경이 우리가 우상을 마음에 들이고 죽음에 이르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Put to death, therefore, whatever belongs to your earthly nature: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evil desires and greed, which is idolatry.

 

탐심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우상을 우리 안에 들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자신과 여러분들에 우리가 우상에 대해 알아야 같아 현대인들이 알아야 우상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상은 우리가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보이는 우상을 향해서는 미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다른 우상들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0:3

너는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여기서 먼저 우리가 생각 해 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여기서 말하는 다른 신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답이 다음 4절에 나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아래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dol in the form of anything in heaven above or on the earth beneath or in the waters below.

 

여기서 우상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저는 우상을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구절에서 우상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너를 위하여…”라는 구절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청저하게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 기독교의 열풍이 불었던 때에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이 다 잘살게 되었음을 이야기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우상에로 돌아서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되는 이리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우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가장 우선하는 기준은 지금 나의 믿음이 무엇을 혹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하는 것을 생각 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에게 힘이 되시는 것은 맞습니다. 나를 지켜주시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시는 일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하나님을 믿는 삶의 이유 혹은 신앙생활의 이유는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설명 해 주고 있습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돈을 버는 이유가 잘먹과 잘 사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명예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우리 마음에 들이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같은 우상을 따르다보면 결국은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 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예수님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믿음을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를 위한 우상을 만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라기는 우리는 우상을 만드는 일을 보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세속적인 우상을 가까이 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잘먹고 잘 사는 것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삶을 통해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두려움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표로 사람들이 신앙생활한다고 여러분들께 말씀 드렸습니다. 어떤분들은 공감하실 것이고 어떤분들은 공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만들었던 상황을 돌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에는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모세가 저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자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자신들을 인도하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내려오지를 않자 이스라엘백성들은 무척 불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신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론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모세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When the people saw that Moses was so long in coming down from the mountain, they gathered around Aaron and said, "Come, make us gods who will go before us. As for this fellow Moses who brought us up out of Egypt, we don't know what has happened to him."

 

이 말씀을 저 나름대로 묵상 하면서 느낀 것은 저들에게 모세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을 걱정 하는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시작 되는 말은 우리를 인도 할…” 영어에서는 조금 다른데 make us gods who will go before us 즉 우리 앞에서 나아갈 신들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알 수 는 것은, 언제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가? 현실적인 두려움 앞에서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모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나섬으로 인해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얻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많아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혹은 앞으로 가야 하는데 인도 해 줄 신이 없어서 불안 합니다. 그래서 신이필요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우상을 만든 사람이 누군가?하는 부분입니다. 바로 아론입니다. 당시 제사장의 역할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우상을 만듭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He took what they handed him and made it into an idol cast in the shape of a calf, fashioning it with a tool. Then they said, "These are your gods, O Israel,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오늘 많은 교회들이 그리고 목회자들이 성경을 빗대어 거짓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내일이 불안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닌가?

즉 나는 나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나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생활이 되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한가지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운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두려움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두려움은 실패라는 두려움입니다. 지난 주간에 한국에서 날아온 가장 비참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 합니다 마지막 집세 와 공과금 입니다 정말 죄송 합니다라고 쓰여진 힌 봉투 한 장을 남기고 어머니와 두 딸이 자살을 했습니다.

12년전 남편이 암으로 새상을 떠나면서 그리고 고혈압과 당뇨가 심했던 큰딸은 병원비 부담으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합니다 식당에서 일하시며 겨유 생계를 꾸려오던 어머니는 어느날 식당 일을 마치고 귀가 하다가 길에 넘어져 크게 다치면서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끊기며 막다른 길에 몰려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 입니다...

 

저는 이 가정을 비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이 가정이 죽을 만큼 힌들었던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죽을 만큼의 용기가 있었다면 다시 한 번 더 힘을 내서 살아보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과 아린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라 마쓰요라는 일본의 변호사가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을 썼습니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죽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17세쯤에 야쿠자 두목의 아내가 되었다가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서 왕따 당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책에서 쓰고 있는 말은 죽을 마음으로 힘을 다해서 살면 무엇을 못하겠는가?라는 것을 이 책에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의 두려움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죽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피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상을 쉽지 않더라구요. 그럴 때 우리 신앙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 아닐까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일까요? 그리고 우리가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일까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일까요? 이사야 41장의 말씀 기억 하시지요?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이 말씀을 묵상하면 두려워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놀랄 일이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두려워할 일이 있을지라도 혹은 놀랄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이런 어려움에 혹은 두려움 안에 있다면 우리는 누구를 찾습니까? 내가 편한 누군가를 찾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없을 때, 이스라엘이 찾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에서 늘 보아왔던 금송아지였습니다.

오늘의 우상은 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돈이 있으면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돈으로 해결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돈 이야기를 하면서 돈이 우상이라고 하면 여러분들 중에는 저에게 너무 비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우상이라고 말씀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6:244

사람이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제가 이 구절을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재물을 겸하여 섬긴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 섬긴다는 단어의 헬라어는 doo-lyoo-o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제자라는 뜻의 dulos가 그 원형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섬긴다는 단어의 원 뜻은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물질의 종이 된다는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잘 되고 싶으십니까? 그런데 미래가 두려우십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 보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반대로 욕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만들게 되는 우상을 포기 하십시오.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셔서 두려움을 이기고 욕심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은 가지 방법(믿음과 사랑)으로 이길 있습니다.

 

앞의 두려움이 우상을 만들게 한다고 말씀 드리면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음으로 두려움을 국복 하는 성도가 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두려움은 믿음으로 극복 할 수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으로 극복 할 수 있다. 믿으십니까?

 

1)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바다 위로 걸어 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자기도 예수님처럼 물위를 걸어보겠다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배에서 내려 물 위에 섭니다. 그런데 이 때, 베드로가 물에 빠져버립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But when he saw the wind, he was afraid and, beginning to sink, cried out, "Lord, save me!"

 

바람 때문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서워 했다는 것, 또한 소리를 질렀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이미 여러분 설교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바람이 우리르 fenfudna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는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Immediately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caught him. "You of little faith," he said, "why did you doubt?"

 

주님이 여기서 베드로에 대해 지적 하는 것은, 베드로가 믿음이 작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베드로가 의심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에 빠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우상을 만들지 않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을 이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2)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단어는 온전한 사랑이란 말입니다. 영어성경은 perfect love라고 쓰고 있습니다. 본래 사랑은 하나님을 일컫는 단어이기도합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아이들이 종종 무서움을 느낄 때, 엄마는 아이들에게 무서움을 이길 수 있는 진통제가 되곤 합니다. 엄마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기에 두려움을 느끼던 아이들이 두려움을 이기는 것일까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엄마를 믿게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게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두려움을 이야기 한다고 하면 당연히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이기신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사탄이 우리에게 공급하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죽음에 관한 두려움에서 이기게 합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가 매일 당하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탄이 심어 놓은 현실의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 자를 위한 것입니다.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하고 싶은 것은 두려움입니다. 즉 우리가 우상을 만들게 되는 이유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두려움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극복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사랑은 공동체적인 것이다.

 

바라기는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과 싸워 이기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깨닫을 때마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과 용기를 얻는 하나님의 자녀, 두려움을 이긴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posted by no turning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