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설교문

행복의 조건 (시편 2:12, 시편 32:1-2)

no turning back 2014. 1. 27. 16:19




오래 , 불려지던 유행가 중에 조경수란 가수가 불렀던 행복이란?”제목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사랑이 중한 것도 이제는 알았어~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

 

가사말을 기억하며 다시금 생각 보고자 하는 것은, 과연 나에게 당신 없는 행복 당신은 누구인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현실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포함한 가족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사에 하나님 넣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 없는 행복은 없습니다라고 있을까?

사역을 해오면서, 아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과연 나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함을 자신있게 있겠는가? 지금 나에게 가장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리는 욥을 고난의 대명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욥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을까요? 그가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에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안긴 하나님의 전사이긴 하지만, 과연 그의 삶이 행복 했을까요? 정말 행복 했다면 그가 행복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글을 다시 보면, 3:18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여기 말씀을 보면, 하박국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 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뻐한다 말은 히브리어의 “geel”이란 말입니다. 단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의 뜻입니다. 여기서 “geel” 뜻은 맴돌다'(어떤 강력한 감정의 영향으로)”, “기뻐하다 뜻입니다. 그리고 이유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입니다.

말씀을 조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반드시 기억 해야 한가지 진실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감사의 이유 혹은 행복의 이유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저는 이렇게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가? 하나님이면 행복과 감사의 모든 것이 된디고 믿는가? 적어도 저는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저의 행복의 주체이십니다.”라고 있습니다. 역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불평의 순간 혹은 불행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을 이길 있었던 것은 항상 하나님이 마음에 주셨던 불평을 이길 있는 감사하는 기쁨과 불행이라고 생각 되는 어려움을 넘어설 있는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느끼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이런 과정을 힘들게 겪어 왔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가 알려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첫째로, 행복한 (복이 있는 )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 하십니까? 얼마나 의지 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이 쉽던가요?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의지 하는 자에게 행복이 있습니다.”라고 설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 함으로 행복합니다.”라고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벼히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  

Kiss the Son, lest he be angry and you be destroyed in your way, for his wrath can flare up in a moment. Blessed are all who take refuge in him.

 

개역개정 성경번역은 피하는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년전까지 사용 되었던 개역 성경에서는 의지라는 단어를 사용 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하나님을 의지 하는 ,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 행복한 자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피한다 혹은 의지한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hawsaw”입니다. 우리 말로는 단순히 피한다는 뜻이고 의지한다는 뜻이지만, 단어가 가지는 본래의 속에는 생명을 구하다 뜻이 있습니다.

민수기에서 보면 도피성(cities of refuge) 나옵니다. 여기서 도피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피할 , 의지할 분이심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피할 곳이 있는 , 의지할 곳이 있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받은 자인 것입니다. 의지하는 것은 단순히 말하면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37:40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The LORD helps them and delivers them; he delivers them from the wicked and saves them, because they take refuge in him.

 

오늘 우리가 행복할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주어진 것은 영생입니다.

 

가지 의지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의지 한다는 말에 포함된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의지 한다는 , 피한다는 것은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When calamity comes, the wicked are brought down, but even in death the righteous have a refuge.

 

여기 잠언의 소망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의 “hawsaw”입니다.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망을 가짐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다고 하던 바울이 소망 없는 자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소망 있는 자로 살았던 것은 바로 그에게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셨고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죽음이고 절망이라고 해도 죽음 너머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에도 소망이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부활입니다. 영원한 삶에 이르는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고전 15:13-14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not even Christ has been raised.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our preaching is useless and so is your faith.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 한다는 , 혹은 피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적인 축복을 받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힘든 하루를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피할 곳이 되십니까? 고통 뒤에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이 되십니까?

 

행복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복이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행복한 , 복받은 자가 되는 축복을 경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행복한 ( 받은 )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사랑 받고 있음에도 사랑을 사랑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여러분은 사실을 믿으십니가? 아니 믿어지십니까?

사도 요한의 말씀입니다.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How great is the love the Father has lavished 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that is what we are! The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is that it did not know him.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연 하나님의 사랑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 알게 되겠는가?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의 사랑인듯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대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을 생각 보았습니다. 속에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랑의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닐 지라도 받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속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쉬운 길을 가기를 원하고 문제가 없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이런 길을 극복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방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기억 해야 하나님의 다른 사랑의 방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고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Of David. A maskil. Blessed is he whose transgressions are forgiven, whose sins are covered.

 

여기서 보면 죄가 가려진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죄가 가려지는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사도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사랑을 받는 자는 허물이 덮어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허믈, 죄를 덮어주시는 그것은 바로 사랑 받고 있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덮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물론, 말이 우리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우리의 모든 잘못되고 부족한 것을 없다고 하시고 덮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바울 사도는 의인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인의 자리에 있는 이유는 믿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솔직하게 스스로 자백해 봅시다. 우리 믿음이 흔들림이 없습니까? 날마다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 믿음을 인정 하시는 것입니다. 믿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자녀 삼아 주시고 죄가 없다고 하시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같이 덮어주시는 사랑은 호세아에서 찾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삶을 따라 별명을 붙여보면, 정의의 예언자로 불리는 사람은 이사야입니다. 눈물의 선지자로 불리우는 사람은 예레미야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예언자로 불리우는 사람은 호세아입니다.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창녀를 아내로 맞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합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아내가 창녀 고멜은 매일 호세아에게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짝사랑을 전합니다.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The LORD said to me, "Go, show your love to your wife again, though she is loved by another and is an adulteress. Love her as the LORD loves the Israelites, though they turn to other gods and love the sacred raisin cakes."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생각으로 혹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행복의 조건이 되지 않으십니까?

 

재미난 이야기, 2012년에 출판된 , “행복의 비결 하바드 대학에서 268명의 20 청년들을 90세가 넘을 때까지 75 동안 무려 2000만달러 (20 밀리언) 들여서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책입니다.   책속에 소개 되고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 가지 우리가 귀기울여야 것은,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하나의 도구 중에 술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49명이었는데 중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불행하다고 했던 48명의 사람 중에 11명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다른 9명은 배우자들이 알코올 중독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책이 마지막으로 내리고 있는 결론은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 얻을 있다 것입니다.

우린 모두는 사랑을 통해서 행복이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사랑은 한 두마디로 간단하게 정의 되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 속에는 우리가 표현 할 수 없는 여러가지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참는 것으로 시작 해서 견디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사랑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 위에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덮는 사랑을 통해 행복의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제가 부족함이 있음에 이런 마음을 압니다.

부부가 서로 덮어주면 부부가 행복해 질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덮어주면 가정이 행복할 것입니다. 주인과 직원이 서로를 감싸고 덮어 주면 아마 직장이 행복해 질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 서로 함께 해야 할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 행복으로 나가는 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한가지 흉허물을 덮음으로 우리 모두 행복의 길로 함께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행복은 정죄를 받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저는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했다고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제가 가지는 마음 중에는 저도 세상 사람들이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마치 반에서 꼴찌를 하는 학생일지라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즐겁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나 리서치란 기독교 통계 조사기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도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설문 조사를 했을 때, 나온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을 우리가 무시할 필요도 없고 싫어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어를 잘 생각하면 그 속에서 우리가 정말 감사하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봅니다.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the man whose sin the LORD does not count against him and in whose spirit is no deceit.

 

누가 복이 있는 자입니까? 누가 행복한 자입니까? 정죄 당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There is not a righteous man on earth who does what is right and never sins.

 

물론 우리는 이해 합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를 변호 하기를 그것이 사람의 한계 아닙니까?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행하지 않은 것은 죄가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죄의 기준은 행함으로 정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looks at a woman lustfully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

 

성경이 말씀 하고 있는 죄의 기준, 사도요한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시는 죄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요일 3: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Anyone who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in him.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자라고 합니다. 이런 기준에서 과연 자유로운자가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까지도 죄의 결과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로 인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마음의 생각이 우릴 온전한 의인의 자리에 이르게 하지 못하겠지만,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온전한 자리에 이렇게 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의인의 길이 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길입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의 힘으로 얻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8

너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사도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더 말합니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who through faith are shielded by God's power until the coming of the salvation that is ready to be revealed in the last time.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단기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현재의 양력에 2333년을 더하면 됩니다. 그래서 2014년은 단기로 4347년이 됩니다. 그런데 김지방이란 분(적과 함께 사는 법의 저자)은 이기간 동안 우리나라가 외국의 침략을 받은 회수는 1000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의 고증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2000번이 넘는다고도 합니다. 이 말은 우리 나라가 과거 역사를 돌아 보면 적게는 2년마다 혹은 4년마다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라고 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항상 도망 갈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행복이 있었을까요? 보호 받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행복은 다 남의 이야기 였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비록 부족하다고 해도 우리에게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믿기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흐니 눈만큼이나 깨끗한 우리로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이를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 하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죄 없다 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덮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제가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신다면 여러분은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불행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여러분의 삶 조차 그리 행복하지 못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당신 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 하지 않으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한계에 묶여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죄인이라고 정죄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여겨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을 정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으신지요?

 

말씀 정리합니다.

행복한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입니다.

행복한 성도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사랑 받는 성도입니다.

행복한 성도는 하나님에게 정죄 받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가진 성도입니다.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 되십시다. 하나님에게 사랑 받는 성도 되십시다. 하나님의 정죄 앞에서 믿음으로 자유한 성도 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경험하는 복받은 사람, 행복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