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101] 하나님 사랑이 계명이라구요? (마 22: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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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연정”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하신 후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방법을 말씀해 주시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방법이 “계명”이란 모양을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슴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만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과 조건을 주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율법사(서기관)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마 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12장에서 서기관의 질문은,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이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 22:37-38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먼저 오늘 질문을 떠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사의 질문은 “큰 계명”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질문들의 주제는 한가지입니다. “크고 첫째되는 계명”입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계명”이란 단어에 마음이 쓰입니다. 계명이란 말은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안지키면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지켜야 하는 계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믿는 것이고, 구약에서는 경외요, 오늘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씀 드리면 믿음이라고 봐야 할 듯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말해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다면 하나님이 인정 하시는 믿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과연 어떤 율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을까요?
오늘 십계명의 첫부분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과 믿음의 모습을 보고, 결단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우리에게 말하는,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 말에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사랑과 불륜의 차이가 무엇일까? 사랑이 사랑이 되려면 “누구를 사랑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5년 2월 한국에서는 간통죄가 폐지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을 사랑해서 다른 가정을 파탄 내고 나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포장 되어도 결국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것을 잘못 된 사랑이라고 표현할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대상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아닐까요? 저는 지난 주에 이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 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우리들이 사랑해야 할 대상은 다른 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애굽에 내려졌던 10 재안은 당시 애굽에 있던 신들을 상징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 나일 강과 그 밖의 물들이 피로 변하였다 à 나일 강의 신 ‘하피’가 수치를 당하였다. (출 7:14-25)
2) 개구리 재앙 à 개구리 여신 ‘헤카’에게는 이 재앙을 막을 힘이 없었다. (출 8:1-15)
3) 티끌이 이로 변하였다 à 주술의 신 ‘토트’는 이집트의 주술사들을 도울 수 없었다. (출 8:16-19)
4) 이집트 전역의 파리 재앙 à 우주의 창조자로 불리던 ‘프타’도 이 재앙을 막을 수 없었다. (출 8:20-32)
5) 가축의 역병 재앙 à 암소의 여신 ‘하토르’, 황소의 신 ‘아피스’도 이 재앙을 막지 못하였다. (출 9:1-7)
6) 독종 재앙 à 치료의 신들인 ‘토트', ‘이시스’, ‘프타’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출 9:8-12)
7) 천둥과 우박 재앙 à 번개의 신 ‘레슈푸’, 비와 천둥의 신 ‘토트’의 무력함이 드러났다. (출 9:13-35)
8) 메뚜기 재앙 à 이 재앙은 곡식을 지키는 다신의 신 ‘민’도 이를 막지 못하였다. (출 10:1-20)
9) 사흘 동안의 흑암 재앙 à 태양신이자 숫양으로 상징된 ‘라(아몬-라)’도 이를 막지 못했다. (출 10:21-29)
10) 장자의 죽음 à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바로(파라오)’의 장자도 포함되었다. (출 11:1-10)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던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만이 진정한 “참 신”이요, 하나님 되심을 이스라엘이 알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스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출애굽 하고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시내광야에 진을치고,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이 반복적으로 말씀 하시는 부분입니다.
출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 보라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사람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성향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에 아버지는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내 아버지는 한 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이런 저런 종류의 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참 신은 하나님 한 분이라고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과연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하나님 맞는가? 아니면 내가 지금 믿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누구인가? 하나님이 아닌 거짓 신을 진짜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인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을 하나님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계신 말씀은, “내가 이런 저런 능력이 있다. 그런데 내가 처음부터 너희를 형통의 길로 보내지 않았다. 이유는 네가 나를 제대로 보고 경험하고 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자신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구체적인 방법은, 4절에서 11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일도 하지 말고 쉬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과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정 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일반 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모습을 봅니다. 심지어 목사님들 중에도 교회의 부흥을 점집에 가서 묻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른 곳에 가서 가짜 하나님 혹은 거짓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말을 합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기서 알게되는 것은, 광야생활 40년에 가나안 정복전쟁 16년, 도합 56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 하셨고, 전쟁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애굽의 신들과 가나안 신들을 함께 섬기는 것처럼 보였는가 봅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너희가 강 저편의 신이든지 강 이편의 신이든지 누구를 믿든지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을 믿겠다”
제가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결정 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우리 사랑의 대상,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이미 선포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자 하는 신이 지금 우리 하나님이십니까?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가 믿고 있는 신 중의 하나인 하나님이 강 저편의 하나님입니까? 강 이편의 하나님 입니까? 아니면 정말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나의 여호와 하나님입니까? 지금 우리 믿음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누구를” 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대상이, 우리 사랑의 대상이 “나의 하나님” 이라고 확신하고 고백하는 이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방법은 둘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율법사와 예수님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방법을 이렇게 설명 하십니다.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12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차이는 마가복음에 “힘을 다하여”라는 말이 추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이 마가복음이 최초의 복음서이고 마태복음이 나중에 쓰여졌다고 하니, 마가복음을 기준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확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방법과 십계명에 쓰여진 1-4계명이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렇게 말씀 하실까요? 여호수아는
수 24: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그 말은 다른 신을 따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 아닐까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신의 모양을 만들어 절하고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절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만드는 우상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이 피조물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에게 창조자의 위엄을 인정하고 절하는 것을 하나님은 볼 수 없다고 하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길, 세상의 형상을 따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마치 나만 사랑해라. 다른 신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이 들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만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출 20:4a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를 위하여…”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는 우상은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신을 찾는 이유가 단순히 나를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나를 위해 존재 하시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우리는 우리를 위한 신을 찾는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마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눅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필요를 챙기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 하시고 그 가족들을 애굽으로 보내서 새로운 이스라엘로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사랑한다”고 “내가 너의 하나님”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한가지였습니다. “나의 백성이 되라”. 즉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 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한가지 더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에 대해 나쁜 이야기 혹은 헛된 말들을 할 수 있을까요? 같은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혹은 욕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내가 높아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며 무언가 마음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나는 항상 “하나님이 나를 위해 ㅇㅇㅇ을 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달고 기도하곤 했는데, 오늘 말씀으을 다시 묵상 하면서 제 마음에 다시 와 닿는 것은, “그를 높이라”가 먼저이고 나를 높이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순간 “먼저 나를 높여 주시면…”이라고 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나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안해준다고 투정하며, 순종하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조건을 세우고 있는 나를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 분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안식일 입니다. 안식일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출 20:10-11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준비 하면서 저는 안식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입장에서가 아닌 이스라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초의 태양력은 기원 전 4241년에 이집트, 성경이 말하는 애굽에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주가 7일이던 혹은 10일 이던 매일 같은 일을 해야 하는 노예들에게는 “한 주”라는 개념은 하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하신 것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 하루를 쉬는데, 그것이 축복 아닌가요?
데이트를 하는 젊은 커플이 6일 동안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고 주말에 만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애틋할까요? 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것을 기대 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살고, 거룩한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때, 우리가 말하는 은혜 가득한 예배가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형상화 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이용하려 해서도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쉼의 날, 안식일에 하나님을 만나고 주신 안식 누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 받은, 축복 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짜는 버리십시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정말 원한다면, 첫번째 계명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말라.”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비교 되는 다른 신은 누구입니까? “재물”입니다. 우리는 재물을 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속에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돈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말입니다. 심지어 이런 말을 들으면서, “그럼 아니야! 사실이 그렇잖아!”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은, “재물이 하나님과 동급”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부귀 영화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도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난 장면에서 찾아 보기 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렸고 많은 고기를 잡은 후, 예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말씀 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이렇게 행동합니다.
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눅 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저는 여기서 관심을 두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 “버려 두고”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결단을 필요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하기로 결단을 했다면, 우린 하나님 이외의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재물을 섬기는 자가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것을 버리고 포기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여러분은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교회에 헌금 많이 해라! 맞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의미로 이 말씀이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목회자만 타락 해서 이 말씀이 그렇게 들여지는 것입니까? 우리의 관심이 너무 세속적으로 바뀌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말씀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우리가 사모할 자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관심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어아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입니다.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외에 나를 위한 신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외에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루 쉼을 줄터이니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깨달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 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외의 것을 버릴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의 것을 세상의 것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소원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그래서 위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라고 소리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