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구약

[신앙생활 101] 칼이 아니라 손입니다. (출 17:10-13)

no turning back 2021. 12. 13. 10:47

https://www.youtube.com/watch?v=eG3ibZ64PU4

 

여러분들은 가장 힘들고 절망 스러운 때가 언제 였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련이 끊임없이 다가올 , 가장 힘들고 어려워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역을 하면서 여러 힘든 상황을 겪었지만, 가장 위기라고 느껶던 때는 2004년도 전교인 수양회를 갔을 였던 같습니다. 당시 LA에서 너무도 힘든 사역을 하고 있었던 터라, 내쉬빌의 사역은 사역의 마지막이 것이라 생각하며 2003 내쉬빌로 와서 사역하던 때였습니다. 한창 교회가 부흥하던 2004, 플로리다로 전교인 수련회를  가게 되었는데, 가정을 제외하곤 모든 성도들이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하루를 아껴 보겠다고 금요일 밤에 떠나 토요일 아침에 도착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했습니다. 여선교회원들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 갑자기 웅성거리며 분이 뛰어와 학생 하나가 수영장 바닷으로 가라 앉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911 연락을 하고 앰블런스가 오는 동안 성도님 분이 침착하게 CPR, 심폐소생술을 해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상태가 심각해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까지는 수련회 장소에서 1시간 떨어져 있었는데, 부모는 차로 이동을 하고, 학생은 헬리콥터로 이동해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 함께 수련회에 참석했던 저와 성도들 일부는 금식하고 기도 했으며, 수련회의 많은 시간을 전교인이 학생을 살려 주십사 매어달리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학생은 회복했고, 문제는 없었지만, 당시 저는 무기력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던 같습니다. 이후, 제겐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역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사역을 쉬는 현재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는 절망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역을 내려놓은지 7년이 되어가는 현재 다시금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으로 돌아가고 있는 같습니다.

삶은 누구나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고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언제 절망하며 무엇이 여러분을 절망하게 하느냐?입니다. 그리고 절망을 통해 여러분은 무엇을 알게 깨닫고, 배우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 출애굽기 17:8-16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 하다가 물을 얻고나서 한숨 돌리는 순간 아말렉 공격해 옵니다. ,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백성들과 함께 아말렉을 대항하며 싸우고,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지팡이와 손을 듭니다.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집니다. 아론과 훌이 이것을 알고 모세의 손을 지탱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쟁의 결과에 대해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이려고 하시는 지를 찾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사탄은 우리의 약함을 틈타 공격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서 봅니다

 

17: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여기서 보면, “ 때에 아말렉이 와서라고 기독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 어떤 때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르비딤에 장막을 쳤던, 그러나 물이 없는 장막을 때였습니다.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본래는 물이 있어야 하는 곳인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장막을 쳤음에도 물이 없는 때에, 물이없는 곳에 장막을 상황이었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막막한 순간이었습니다. 짐작컨대, 르비딤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거나, 르비딤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믿고 따라 왔지만 정작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던 ,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믿지 못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말씀을 떠올려보면, “ 물이 없어 불평하던 입니다. 광야에서 가장 필요한 물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단순히 물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불평하던 입니다.

 

17: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순간, 4 말씀을 보면, 모세 역시 죽음에 이를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지만, 모세도 죽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던 순간이었습니다.

 

17: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아시겠지만, 이스라엘에게 돌에 맞아 죽는다 의미는 죄에 대한 징벌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의 인도자인 모세가 그런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 하던 였습니다.

 

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인도 하셨음에도 광야생활에 가장 필요한 물이 없어서 불평이 극에 달한 ”, 뿐만 아니라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순함이 있던 였습니다. 순간에 아말렉이 쳐들어 것입니다. 아직 지도자를 믿고 따르기엔 거리감이 있고, 지금 가고있는 광야 길에 대한 정보도 없는 ,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핸 절대 믿음도 없던 ”, 아말렉이 공격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오늘 우리 속에서도 존재하는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듯에 순종하며 최선의 길이라고 해서 가는 , 그런데 가다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 그래서 실망하며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는 나의 모습. 심지어 하나님에게 기도 한다고 무릎 꿇지만 원망하듯 한마디 던지며 하나님이 어쩌면 이럴 있느냐고 하나님을 시험 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말렉에게 공격당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보았습니다. “ 이스라엘에게도 아말렉에게도 모두 중요한 때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지금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우리를 최선을 다해 공격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먼저 겪었던 사도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런 경고를 줍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일단 먼저 우리가 알아야 것은, 사탄이 삼킬자를 찾는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대적하는 방법을 두가지로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근신한다 말은 헬라어 nhvfw라는 말로, 술 취하지 않다, 신중하다 뜻입니다. 또한 깨어라 말은 헬라어의 grhgoreuvw라는 말로 문자적으로는 정신차리다. 경계하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과 함께 가셔서 기도 하실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베드로 누구보다 깨어있지 못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 ”, 준비 되지 않은 ”, 불평이 넘치는 ”,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있는 사탄의 공격받기 가장 쉬운 순간이다. 조심해라! 근신해라! 깨어 있어라!

 

지금 힘든 삶으로 인해 하나님께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혹은 너무 평탄해서 느슨해진 신앙생활 하는 분이 계십니까? 사탄이 공격하려 함을 깨달으시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 기도하며 말씀으로 준비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아말렉은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성경 속에서 아말렉은 끊임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아말렉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것입니다. 아말렉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25:17-18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말렉의 특징은 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에 주저함이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책임도 있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이스라엘 자신이 믿지 않았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항상 스스로 이스라엘에게 너의 여호와임을 알리시려 하셨습니다.

 

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신들이 경험하는 기적의 부분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같습니다. 이로 인해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없기에 더욱 이스라엘을 쉽게 공격하게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말을 믿음이 없는이란 의미로 말씀을 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부분을 조금 생각하던 , 몇가지 마음에 깨달음을 얻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끔은 교회 안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시는 분들 중에도 그런 상황을 만드시는 것을 봅니다. 물론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구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믿음이 없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함부로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들로 말미암아  오늘의 교회들은 불신자들의 동네북으로 전락해 버린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아말렉 우리 주변에도, 교회 안에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것은, 하나님이 아말렉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 하시는가?하는 것입니다.

 

천하에 기억도 못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대대로 싸우겠다고 하십니다.

 

17: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기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아말렉은 하나님이 멸하셔서 기억도 못하게 하겠다. 그리고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합니다. 이는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들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신앙 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구절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 보는 것은, 아말렉의 공격은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 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훈련의 과정으로 만드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닫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두려운 분임을 조금씩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은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솔로몬은 지혜서인 잠언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우리가 삶에서 경험할 있는 아말렉의 공격은 우리가 힘든 순간일 있습니다. 겨우 한숨 돌린 순간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 해야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지키시고 도우시며, 우리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고백 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이 제게 더욱 힘이 되는 이유는 여전히 이스라엘은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수준으로 믿음이 자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전쟁터에 서서 불신자 아말렉을 만나 사움을 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오느 ㄹ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위해 사우리니 너는 나를 믿으라! 지금이 사탄이 기다리던 내가 약해지는 순간이라고 해도 반드시 하나님은 싸움에 나를 위해 승리하게 하심을 믿고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불신앙 싸워 이기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르비딤에 진을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이 과연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일까요?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스라엘은 현재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르비딤에 진을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것입닏. 그런데 아말렉이 찰나에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는 사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보기에는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이 맞습니다. 하지만, 싸움에서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계심을 보게 하십니다.

오늘 성경으로 돌아가서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는 부분입니다.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재미난 것은 여호수아의 반응입니다. 모세가 너는 나가서 싸워라 나는 산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올라가 서리라! 했으면,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떻게요?”라고 물을법한데 여호수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호수아의 행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저는 구절을 보면서, 과연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 했을까? 하는 생각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여호수아가 백성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겁니다.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야 한다. 싸움에 나갈 사람은 알아서 자원해 주기 바란다.” , 선뜻 나갈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250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그들이 마음이 수동적으로 바뀐 사람들이었습니다. 소극적입니다. 싸움이라곤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슴니다. 수중에는 무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가서 싸우라니요? 하지만, 여호수아는 아무말 없이 순종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집니다. 올린 손이 피곤해서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피곤해도 손을 내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밀리기 때문입니다. ,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있도록 돕는 아론 등장합니다. 그리고 손을 받쳐줌으로 아말렉을 물리치게 됩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말렉과의 싸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을 향한 한가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 하나님의 싸움을 감당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피곤해서 팔이 내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 돕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혼자할 있는 기도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기도가 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기도 하는 자에게 힘을 북돋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말렉을 물리친 순간. 여기에 마지막 점을 찍습니다.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싸움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점을 여호수아가 찍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의 기쁨을 가져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놓고 기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응답을 맏고 문제가 해결 되었을 , 마치 우리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마음 뿌듯한 승리를 만끽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움은 항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의 즐거움은 이스라엘이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사람이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이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32:26-27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사람의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삶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순간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에게 매달립니다.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응답을 받습닙다.

 

32:28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능히 이길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자에게 져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생각이 머무는 자리는 싸움은 하나님이 하시고 승리는 내것으로 남겨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믿음이 흔들릴 , 속에 주어진 현실로 인해 불평이 생겨날 ,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하심이 불편할 , 아말렉과 같이 하나님을 무서워 하지 않는 자들이 공격해 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 아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현실을 앞세워 나를 공격하는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 승리임을 말씀 하십니다.

우리의 싸움은 칼로 싸유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싸워주십니다. 우리는 칼을 들고 하나님의 승리를 나의 승리라고 하며 하나님게 영광돌리고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여러분!

나의 연약함을 큼타 현실을 가장한 사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악의 공격에 믿음으로 맞서고, 하나님이 대신 싸워 승리함을 믿고 오늘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승리의 잔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그리고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