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귀로 읽는 설교

[신앙생활 101] 인정 받는 그리스도인 (마태 7:21-23)

no turning back 2021. 2. 20. 01:45

https://youtu.be/M5UJZfaGzfE

 

오늘날 교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왜 사람들은 교회를 싫어하게 된 것일까요? 요즘 COVID-19때문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한국에서는 교회만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식당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이트클럽에는 영업 허가를 내 주어서 확진자 수가 수백명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에 대해서는 가벼운 규제를 하면서 연일 언론에서는 교회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주범인 것처럼 모든 화살을 교회에 돌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 하십니까?

 

오늘 말씀은 21-23까지 봉독 했지만 사실은 15절에서 시작된 말씀입니다. 15절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Watch out for false prophets. They come to you in sheep's clothing, but inwardly they are ferocious wolves.  

 

여기서 삼가라는 말을 조금 더 설명하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이 조심해라! 거짓 선지자들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삼가라, 조심해라라는 말이 서두에 나오는 이유는 삼가라!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문법을 공부해 보면, 처음에 삼가라!는 명령형 구조가 나오는 경우는 헬라어 문법상 강조의 의미를 가집니다. 헬라 문학은 몇 가지 강조법의 방법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처럼 명령어를 가장 서두에 쓰는 것입니다. 이 말, 다시 말해서 이 문법 구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해서 하시는 말씀은 거짓 선지자를 조심해라! 악한 선지자를 유의해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탈을 쓰고 교회 안에 들어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제가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성도님들이 이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보면, 거짓 선지자라고 표현하는데, 이 거짓 선지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목회자 일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를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교회 재정을 망가뜨리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리가 양 가운데 들어온 것은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양의 무리를 흩어 트리는 것이 이리의 목표입니까? 아니면 양을 잡아먹는 것이 이리의 목표입니까? 즉 교회 안에 거짓 선지자가 들어온다면 혹은 들어왔다면, 그 이유는 교회를 쓰러뜨리는 것 이전에 양을 죽이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은 누구입니까?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을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른 신앙생활, 요즘 표현으로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구별함으로 우리가 은혜로 얻은 영생을 지켜내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 교회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생까지도 잃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저 자신이 다른 목회자보다 능력이 있고, 잘났고 등등의 그런 목사가 아니란 것을 잘 압니다. 오히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에 덧붙여 은혜로 사역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제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나로 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로 돌아가서 다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욕먹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왜 오늘날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다른 이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합니까? 그러면 도대체 우리의 믿음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첫째로, 먼저 내 믿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살펴봅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주여, 주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혼돈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And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for,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을 것임을 이야기하는데, 왜 여기서 주님은 주여, 주여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자세, attitude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보면 구원받을 수 있는 부르짖음을 소리치는 것, 간절하게 외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주여 주여 하는 자는 헬라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할 때, say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냥 아무개라고 이름 부르듯 부르는 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은 제자 요한과 이런 말씀을 나누신 적이 있습니다.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Teacher," said John, "we saw a man driv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old him to stop, because he was not one of us." 

 

이 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9:39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Do not stop him," Jesus said. "No one who does a miracle in my name can in the next moment say anything bad about me, for whoever is not against us is for us.

 

이런 일로 우리는 찝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롤 모델은 누구입니까? 내 믿음의 모범이 누구입니까?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혹은 목사님! 아닙니다. 여러분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본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Follow my example, as I follow the example of Christ..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으니 나를 본받으라! 이런 뜻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내가 그분을 본 받으려 하는 것을 너희도 보고, 너희도 나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까? 예수님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고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3:6

많은 사람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he,' and will deceive many.

 

저도 목사인데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 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복음에서 벗어나면 가짜인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건강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모른다고 고개 돌리시는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자신의 믿음을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의 기준을 주님에게서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둘째로, 그러면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내 믿음에 문제가 있는지를 돌아보았다고 하면, 이제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이 받으시는 믿음,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위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Therefore everyone who hears these words of mine and puts them into practice is like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on the rock.

 

이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게 하는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말을 듣고, 행하고

자 여기서 먼저, 듣는 것이 주는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들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다고 합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들음을 통해 주시는 은혜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들음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면, 이 믿음은 반드시 무엇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까? 행위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에 가면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비슷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 해 보시기 바랍니다.

 

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앞에 두니라

sold a field he owned and brought the money and put it at the apostles' feet.

 

5:2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앞에 두니

With his wife's full knowledge he kept back part of the money for himself, but brought the rest and put it at the apostles' feet.

 

두 사람 모두 상당한 재산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죽임을 당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일까요?

이것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여러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지가 아닌 이상 많고 적음으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랐을까요?

제 생각에, 한 사람은 믿음으로 드렸고, 다른 한 사람은 오늘 많은 교회에서 보듯이 보이기 위해 혹은 가식으로 드린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것은 얼마를 드렸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얼마를 감추었느냐 

Then Peter said, "Ananias, how is it that Satan has so filled your heart that you have lied to the Holy Spirit and have kept for yourself some of the money you received for the land?

 

여러분의 생각에,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성령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시나요? 아니면 우리가 하는 행위가 성령이 하게 하시는 행위라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저는 삭개오라는 사람을 정말 좋아합니다. 지난 주에도 여러분들에게 삭개오의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던 그 마음이 너무도 배우고 싶고, 동시에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 삶이 변한 것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의 순간을 성경에서 봅니다.

 

19:5

예수께서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When Jesus reached the spot, he looked up and said to him,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이 말을 들은 삭개오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But Zacchaeus stood up and said to the Lord,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주님이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믿음이고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믿습니다.

믿음은 행동을 만듭니다. 그리고 행동을 만드는 믿음은 성경말씀을 들음에 기초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행함으로 네 믿음을 보이라

 

2: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But someone will say, "You have faith; I have deeds." Show me your faith without deeds, and I will show you my faith by what I do.

 

바라기는 우리의 행함을 통해 믿음이 드러나고, 사람에게 칭송받는 교회 성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믿음은 주님이 알아주시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나의 믿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가 자신의 믿음을 알아주기를 원합니까? 나와 함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나의 믿음을 알아주기를 원합니까? 혹은 담임목사가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주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의 어떤 믿음을 알아주기를 원하십니까? 헌금을 많이 하는 믿음을 알아주기를 원하십니까? 성경 지식이 많은 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누가요? 하나님이요? 아니면 목사요? 그래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이 보상 받을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어디서요? 세상 에서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인가?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백부장과 하인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건 속에서 백부장은  당시 유대인에게 까지 인정 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여러 보내어 자신의 종을 고쳐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정작 예수님이 그의 집으로 오시려고 ,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7:6-8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사람이요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So Jesus went with them. He was not far from the house when the centurion sent friends to say to him: "Lord, don't trouble yourself, for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That is why I did not even consider myself worthy to come to you. Bu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Luk7:8)For I myself am a man under authority, with soldiers under me. I tell this one, 'Go,' and he goes; and that one, 'Come,' and he comes. I say to my servant, 'Do this,' and he does it."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무엇이라고 백부장을 칭찬했습니까?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mazed at him, and turning to the crowd following him, he said, "I tell you, I have not found such great faith even in Israel."

 

무엇보다 백부장은 그의 믿음이 주님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생각 해 보아야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인정받기 이전에, 먼저 그의 인품이 유대인에게까지 인정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백부장의 부탁을 들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만한 믿음이라면, 우리의 삶 역시도 인정받는 삶 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꼭 인정 받아야 하는가를 물으신다면, 저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 중에,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5: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Mat5:14)"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가끔은 정말 믿음이 좋은 분들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종종 좋은 믿음으로 치장한 분들을 보기도 합니다. 믿음이 좋은 줄 알았는데, 믿음의 치장은 잘 했는데, 정작 알맹이는 없는 믿음을 가진 분들 보았다는 말입니다. 알아주면 잘하고, 안 알아주면 하지 않는 그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구보다 힘을 가지고 주체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다면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기준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믿음의 기준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까?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3:10

내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I want to know Christ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sharing in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사도 바울은 무엇을 본받는다고 합니까? 죽음을 본받는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의 믿음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웠습니다. 그래서 죽고 사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에 갈등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행한 삶의 기준을 그리스도에게서 옮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신앙의 기준을 어디에 놓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물론 힘든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큰 소리 칠정도로 삶 속에서 본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목표로 삶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과연 세상에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쉽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약 신앙생활이 쉽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하는 신앙생활이라고 하면, 저는 힘든 일 가운데서도 이기는 즐거움을 찾는 신앙생활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주님은 찾으신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No temptation has seized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 But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also provide a way out so that you can stand up under it.

 

이 말씀을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탄한 길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으로 생각하십니까?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래서 시험 당하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저에게는 이 말씀이 너희에게 시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나 이겨라, 믿음으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어려움을 네가 이기는 것이다. 나는 네가 이 시험을 이겨 낼 것이라 믿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종종 이용하는 필립 얀시의 오래된 책,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책 속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당대의 의인이라고 인정 받던 욥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라고 스스로 물으면서 그 답을 하나님은 욥이 마귀의 시험을 이겨낼 줄 믿으셨기 때문이다. 라고 답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것은 단순히 죄로 말미암은 벌이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믿어서 지금의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믿음을 항상, 수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기준, 믿음의 기준은 상대적인 기중으로 세울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책 제목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어로는 imitate the Christ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세상에서는 삶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to be è 하나님에게 믿음이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to do è 사람들에게 삶으로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