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101] 여호와 하나님 (출 16:12)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말 못해도 스스로에게 소개할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믿음의 시작점이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떤분으로 인정했기에 하나님이 그를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을까요? 살펴보면, 다른분에게는 몰라도 저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장 빛난 순간은 창세기 17장 1절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창16:16의 말씀을 함께 봅니다.
창 16:16-17:1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서 보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86세에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인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구십구세(99세)입니다. 이 말은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모습 속에서 제가 느낀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마음은 “하나님은 절대자”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이것이 제가 아브라함에게서 느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갖기를 원하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고 엘림을 떠나 “신광야, 죄의 광야”에 들었을 때, 먹을 것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불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들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십니다. 1일째부터 5일째 까지는 하루 한 오멜씩, 6일째되는 날은 2오멜을 거둘 수 있었고, 7일째 되는 날은 아무것도 거들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신 6일째 거둔 것으로 7일째에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셨고, 이것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절대자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오늘 “신광야”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듣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말씀을 대하기 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말씀을 듣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인정하는가?
첫째로, 불평을 들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서 봅니다
출 16:7-9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출 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느라 빼먹은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서 접근해 봅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무엇을 이스라엘이 잊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평이 우리 인간사에서 보면, 있을 수 있는 불평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평은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복음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열두해를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느날 예수님을 만나면 낳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군중 틈에 섞여서 예수님에게 다가가 그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경험합니다. 이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눅 8: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이 말은 누가 옷을 만졌는지 어떻게 알겠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못자락을 만졌어도 나음을 입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 해야 합니까? 도데체 함께 있던 사람들은 뭘까? 이어서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저는 여기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병이 고침을 받게 되는 그런 사람인가? 오늘 본문 말씀 다시 한번 봅니다.
출 16:12
이 말은 하나님을 우너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허락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고기와 떡으로 공급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불평을 들으시면서도 불평을 듣는 것으로 우리를 책망하시거나 처벌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우스운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저들에게 저들이 우너하는 것을 공급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듯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에 묶여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을 들으실 분이 아니신데도 우리 불평을 들어주시고, 필요를 채워 주시며, 날마다 우리의 공급자가 되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시간 우리가 생각 해야 하는 것은, 나는 불평만 하는 신앙인 인가? 아니면 삶 속에 인간적으로 많은 불평할 꺼리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는 신앙인 인가? 를 돌아보고,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는, 그리고 응답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순종
하나님이 에덴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가 살게 했을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계명은 한개였습니다.
창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귭기 15장의 마라의 쓴 물 사건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계명과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출 15:25b-26a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계명과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할 말씀은 모세를 통해 주시는 말씀 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보면, 이스라엘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주신 계명과 율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매일 필요한 양을 사람의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출 1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기를, 거두어 들인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놓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필요이상으로 거두어들인 만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출 16: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2 오멜씩, 갑절로 거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출 16: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저는 이 부분을 묵상 하면서 바울의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순종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겠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사람들에게는 그 명령이 미련할 수 밖에 없고, 그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명령에 순종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는 뜻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한 기적으로 생각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기적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이 저들에게 기적을 행하셔야 했던 이유를 혹은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인정 해 주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아니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니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순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이스라에 ㄹ백성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혹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불평합닌까? 그 불평의 이유가 감당하기 어려워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이스라엘의 불평이 오늘 나의 불평은 아닙니까?
기억 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혹은 계명에 순종하는 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진정 내 하나님, 여호와라 찬양하며 영광 돌려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출 16: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저녁에는메추라기를 통해서 고기를 공급 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고기를 공급해 주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애굽 땅에서 인도 하여 내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 보겠습니다.
출 16: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아침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조금 경망 스러운 표현을 하자면, 하나님이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행했다”라고 생색을 내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동시에 왜 그렇게 하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출 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시면서 기대 하는 것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적을 통해서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을 인정 하고 하나님을 여호와로 인정 하고 순종하기로 결단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힌 일이라고 믿습니다. 신약시대에 어느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리고 제자들은 대답을 합니다.
마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 대답은 좋은 대답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 차는 대답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고난과 죽음을이야기 하다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부르시며 야단을 칩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는 믿음의 고백을 드렸고,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순종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는 순간 그는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함께 보면서, 우리가 믿음의 고백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해도, 한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화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면서, 매일 한 오멜씩을 식구의 수대로 가져가고 일곱째 날에는 2일 분량을 가져 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중에 한 오멜 이상을 가져 갑니다. 그 결과 썩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섯번째 날에 2일분(두 오멜)을 거두어야 하는데 한 오멜만 거두고, 7일째 되는 날 아침에 만나를 얻기 위해 밖에 나갑니다. 그리고 헛탕을칩니다.
어쩌면 그리 큰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일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 하십니다.
출 1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었는데,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듣지 않았가 때문에 하나님은 화를 내시고 계신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거창한 일을 하려고 하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잘못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사울왕이 아말렉과 대치 중에 사무엘이 늦게 오자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영어로 하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시지요? 두개의 단어가 사용 됩니다. 한 단어는 “WORSHIP”이고 다른 한 단어는 “SERVICE”입니다. 형식을 갖츤 예배는 WORSHIP이라고 하면 형식 없이 삶 속에서 드리는 예배를 service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삶이 예배 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삶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삶의 예배를 멈추는 순간 하나님 앞에 제사 형태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드리는 “worship”은 짧은 순간이고 우리의 “service”는 긴 시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순종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 하는지, 아니면 그저 세상의 많고 많은 신중의 하나로 믿고 따르는지를 스스로 돌아 보고 확정 해야 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때문에 하나님에게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필요를 채워 주시면서, 저녁에는 하나님이 하신 것을 깨닫기 원하셔ㅛ고 아침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음식을 거둘때는 매일 한 오멜씩 그리고 여섯째 날에 두 오멜을 거두라고 말씀 하셨고, 그들에게 순종을 기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안타까움을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출 1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불평을 들으시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 주시면서 우리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듣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의 하나님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어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아래서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고백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