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101] 아!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셨구나! (출애굽기 3:7-10)
“그럴줄 알았어!”라는 말을 사용해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요즘엔 이와 비슷한 말로 “아! 아무개는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항상 계획이 있으시더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2주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깨어나서 가장 섭섭했던 것은 천국을 보지 못하고 그냥 깨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결국 사역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게 죽음에서 일어나게 하셨으니 반드시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 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헸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역을 접고, 어느날, 제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너무 엉망인것을 보며 스스로 훈련하듯 이렇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지금까지 14년이 되어갑니다. 그 기간동안 하나님은 저를 낮추셨습니다. 아니 회개의 시간을 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상황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사는 방법을 터득 했습니다. 갑자기 사도바울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말씀의 깊이를 깨닫고 나니 제입에서 고백처럼, 탄식처럼 흘러 나오는 말씀은 “아!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셨구나!”라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아브라함에서부터 출애굽의 시간을 노트에 적으면서 계속 제 머리속에 맴도는 것이 있어 말씀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아!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셨구나!”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인정 하고 믿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그 때를 결정 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 였는가?를 묻는다면 아마 40대 중후반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그 때가 저의 열심과 하나님의 뜻이 가장 많이 부딪히던 시기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던 시기여서 하나님의 계획과 그 때를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때를 결정하신다”라는 것입니다.
ㅎ나 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시 오실 그 날에 대해 말씀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주님하신 말씀입니다.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나님과 한 분이신 예수님 조차도 하나님의 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회복의 시기에 대하 묻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이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때를 결정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기로 결정 하신 시기는 “왜?”라는 의문을 갖기 보다는 “지금이군요!”라는 순종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하나님이 “지금”이라고 결정 하신 그 때, 우리는 핑계 댈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을 시작 할 때, 모세의 나이가 80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서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온지 430년이 되어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몇번에 걸쳐 “왜?”라는 질문을 합니다. 첫번 질문은, 흡사 “왜 내가 가야합니까?”라는 질문과 참으로 비슷합니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하시는데, 정작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혹은 왜 내가 가야합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은 다음 절에서 이렇게 답해 주십니다.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질문에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 하시는 겁니다. “너는 내가 함께 하는 사람! 알았니?”
그러자 모세가 다시 하나님에게 되 묻습니다. 그러마 나를 누가 보냈다고 말 해야 합니까? 저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출 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이에 대해 하나님이 대답을 주십니다.
출 3:14-15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모세는 다시 변명을합니다.
출 4: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세에게 보이십니다.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네가 알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출 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자기가 말을 잘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하기 싫음에 핑계를 대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 하십니다.
출 4:11-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래도 모세가 반항하듯이 하나님에게 거부 의사를 밝힙니다.
출 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에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출 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이 과정에서 보면,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 속에서 모세가 자신 없어 하는 부분에 대해 하나님은 화를 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말을 못한다고 핑계를 대자 하나님은 화를 내십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행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나름 지도자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에 대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모세가 알지 못하고 물어보면 화를 내지 않으신 하나님이, 이 부분에서는 모세에게 화를 내시십니다. 이 상황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 하시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순종, 그리고 받아들임”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맞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순종, 받아들임”이 전부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일군 되셔서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여기서 저는 먼저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혹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누구다!”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를 살펴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한 자리에서 내가 믿고 순종한다고 해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수 있는데, 내가 하나님을 누구라고 하면 되겠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 하십니까?
1) 나는 “여호와, 스스로있는 자”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는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분입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뭔가 추상적인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 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분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 6:31-32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우리의 삶이 전쟁터와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맞습니다. 사역만 할 때는 모르던 삶의 무게를 사역을 멈추고 세상에서 경쟁 하다 보면, 한 없이 무겁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벌입니다. 이 때의 일을 기억 하십니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전쟁을 하러 나갑니다. 그 때, 모세와 아론 그리고 훌은 산에 올라 하나님에게 손들어 기도 합니다.
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정말 많은 갈등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해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해와 상관 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치는 동안 계속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는 아닐지라도, 항상 나를 위한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한 순간도 쉼 없이 일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우리에게 말씀 하여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 하며 승리하는 신앙생활하는 하나님의 백성,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믿는 자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반열을 세우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생각으로는 잔인하게 보여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믿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자신의 말로 하라고 하면 어떻게 정의 하시겠습니까?
오늘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모세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믿음은 “순종, 받아들임”입니다.
1) 모세는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찌기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삭을 드린 것이 믿음으로 드린 것임을 말합니다. 즉 믿음은 순종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세 역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라고 할 때 가고, 서라고 할 때 섰습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모세는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 올 때. 모세가 어떻게 했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기드온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택함을 입고난 후, 하나님께 마당의 양털이 젖게 해달라고, 양털은 마르고 마당이 젖게 해달라고 두 번의 표적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이를 들으신 후,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 합니다.
삿 6:25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후에. 하나님이 주신 이 명령을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런데 이 택함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행 16:6-7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성령이 이그시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일인가?를 생각 하기 전에 먼저, 과연 지금의 일이 내가 하나닙의 뜻에 순종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순종의 사람인가? 이것이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돌아 보며 생각하라고 하나님이 물으시는 질문이 아닐까요?
2) 모세는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십니다.
저는 모세를 생각하며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통고 하는 순간입니다.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사건은 정말 억울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일에 대해 불평 없이 받아 들입니다. 하나님에게 묻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 속에는 별일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듯이며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 6:30-31
31.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아시고 나에게 다가 오셔서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사람, 믿음이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때를 스스로 결정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찾기 전에 나에게 다가 오셔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일 하십니다.
한가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혹은 하나님의 일꾼 된 삶을 살려면, 우리에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받아들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셨구나!” 기도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