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귀로 읽는 설교

[신앙생활 101] 당신은 부자입니다. (누가복음 18:18-30)

no turning back 2021. 2. 20. 01:41

https://youtu.be/x2Cf_mZY1TE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착각하는 것은, 기독교를 세상의 일반 종교와 같이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세상의 일반 종교와 같지 않습니다. 가끔 천주교와 기독교를 같은 기독교의 범주에 넣는 것을 봅니다. 저 역시 과거에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지식이 없이 다른 사람에게 쿨 해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천주교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뭔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 중에 천주교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직접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싫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독교가 세상의 종교와 무엇이 다른지 아주 쉽게 그러나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고 보여집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공관복음이라고 하는 마태, 마가 그리고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내용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여기 한 사람은 마가복음의 표현이고, 오늘 누가복음에는 관원으로 마태복음에는 처음에는 어떤 사람,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청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부르며,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마태복음에는 단순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반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시간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기 원합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함인가? 영생이 있음을 믿기에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가? 과연 내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세상의 복을 내 힘으로 얻을 수 있을까?

 

 

첫째로,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이 질문은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질문입니다.

 

16:15-16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장난삼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일 이었단 뜻입니다.

 

제가 여기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던 질문과 동일힙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혹은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고백 하십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것은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를 선생으로 보면 우리는 그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기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람에 대한 공관 복음상의 공통적인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선생님입니다. 그의 관심이 영생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저 영생의 방법을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도 그런 생각으로, 그런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혹은 알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경험하고 나서 나의 고백이 바뀔 수 있는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나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Simon answered,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여기서 베드로는 분명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던 그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물을 내립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선생님에게 고기 많이 잡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당연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인사는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고백 이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When Simon Peter saw this, he fell at Jesus' knees and said, "Go away from me, Lord; I am a sinful man!"

 

저와 여러분이 여기서 봐야 할 베드로의 첫번 고백은 주여!입니다. 베드로에게 선생이었던 예수님이 (Lord)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에게 있는가?라는 것입니다.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못하고, 선생으로 고백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선생에게 세상에서 축복받는 방법과 형통의 비법을 묻습니다. 그리고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그분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시는 질문은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이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두번째로 베드로의 고백은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와 주님의 관계는 주님과 죄인의 관계임을 인정 하는 그런 관계여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스스로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동시에 나는 그분 앞에서 어떤 존재입니까?

 

 

둘째로, 영생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아는가?

 

저는 오늘의 질문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영생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아는가?라는 주님의 물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선생님 혹은 선한 선생님 이라고 부른 후,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마태복음과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집니다. 단순히 선생님이라고 표현되어진 마태복음에서는 선한 일이라고 표현되고 있는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대신, 무엇을 하여야라는 단순한 질문을 합니다. 즉 예수님을 단순히 선생님이라고 부른 마태는 선한 일로 기록하고, 마가와 누가는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대신에 단순한 질문 무엇을 하여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함을 정의하는 대상이 예수님과 일로 구분되는 상황에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선함의 방향을 한 곳으로 정리합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19: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Why do you ask me about what is good?" Jesus replied. "There is only One who is good. If you want to enter life, obey the commandments."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Why do you call me good?" Jesus answered. "No one is good--except God alone.

 

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Why do you call me good?" Jesus answered. "No one is good--except God alone.

 

마태복음을 비롯 마가, 누가복음을 보면 이 부분에 있어서 영생에 관한 질문자의 관심을 한 곳으로 돌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 선생님, 선한 일, 이 모든 것에서 선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선함을 행위적인 면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본질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선하다는 말은 헬라어의 ἀγαθός 입니다. 이 단어를 구약성경에서 찾아보면, טֹוב (towb/tobe)라는 단어가  559회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어를 가장 먼저 찾을 있는 곳은 창세기 1: 4절의 첫날 빛을 만드신 하신 말씀입니다.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문장에서 좋았더라 טֹוב (towb/tobe)가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 보기에 좋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조금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Höver-Johag, H.J. Stoebe같은 성서 학자들은 이 단어가 단순히 좋다라는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하나님의 뜻에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말합니다. , 창세기의 좋았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이 선하신 분임을 설명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분임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생각 해보면, 예수님은 선한 것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선의 기준이 무엇인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우린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 보신적이 있습니까? aJmartavnw, taF;j'라고 쓰여진 의 의미는 과녁을 벗어나다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삶 이것이 선함의 본질이며, 이런 본질을 가진 하나님을 우리는 선한 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분명 지루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혹은 누구를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세상인가? 천국인가? 이 세상인가?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예수님께 질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함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Why do you call me, 'Lord, Lord,' and do not do what I say?

 

이 말씀은 너희에게서 말씀대로 행함을 찾기가 힘들구나!라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여기서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 그 누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삶을 살수 있을까? 과연 예{수님은 가능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는 아마 권력도 있고 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통해 영생을 얻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기 위해 기꺼이 얼마의 투자도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서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저를 포함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의 현재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눈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내 눈을 향하고 있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생입니까? 세상에서의 축복입니까? 영생의 문젝사 해결 되지 않으면 세상의 축복은 나에게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아십니까?

우리가 반드시 기억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은혜 많이 받으시고, 구원의 자리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생각 해 보셨거나 혹은 깨달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제가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경험하게 된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스가랴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So he said to me,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to Zerubbabel: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says the LORD Almighty.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하려 해도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 사도바울의 고백을 떠올리곤 합니다.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이 고백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환난과 궁핍에 처했다는 것처럼 저에게 힘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돈을 버는 재주는 없어도 사역에 있어서는 열심히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로 먼 길을 돌아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안 하려고 해도 되는 것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능력과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부탁처럼 그늘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그 답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이유는 그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라는 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신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삭개오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When Jesus reached the spot, he looked up and said to him, "Zacchaeus, come down immediately.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내려오라고, 너의 집에 가겠다고 하자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But Zacchaeus stood up and said to the Lord,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이 고백을 보면 예수님이 찾아온 그 사람에게 했던 말은 우리가 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찾아온 사람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재산을 팔아 나눠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그런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우리는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 펼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혹은 하고 싶지 않은 그 일은 내가 하나님을 보지 않아서, 내가 가진 것을 포기 못해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이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부자는 단순히 물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하는 모든 것이 내가 소유한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 해 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율법이 명한 것을 다 지켰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행했다고 대답합니다. 이에 주님은 추가로 말씀하십니다.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Jesus answered, "If you want to be perfect, go,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Jesus looked at him and loved him. "One thing you lack," he said. "Go, sell everything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When Jesus heard this, he said to him, "You still lack one thing. Sell everything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이 사람은 이 말 때문에 예수님을 더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영생을 위해 스스로 포기하지 못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해 봅니다.

무엇이 나에게 영생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 했는데, 결국 내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내가 가진 것 때문에 주님을 포기할 것을 아시고 내가 가진 것을 종종 거두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거두셨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주님에게 더욱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 그것은 내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들 때문에 주님을 포기한, 무엇인가가 아닐까? 다시 말해서 나는 너무 많이 가진 자라는 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믿음을 바르게 가지는데 장애가 될 만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포기하라!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이 영생의 주체임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가 행위로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행하려 해도, 영생에 이르는 것은, 에덴에서부터 죽음 없이 가능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행하기 보다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다시 말해서 영생은 우리가 무엇을 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속에 주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보다 소중함으로 내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부자입니다. 이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주님보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