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설교문

부자로 살기 vs.나사로로 살기 (누가복음 16:19-31)

no turning back 2015. 7. 10. 16:02


오늘 본문 말씀을 처음 들으시는 분이 계신지요? 천국과 지옥을 설명 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예수님께서 말씀 주신 비유 말씀입니다.

내용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름 없는 부자와 이름이 있는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이름은 없지만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이름은 있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거지답게 살았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정리된 예화는 죽어서 천국에 이후의 부분을 밀도 있게 설명 주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들께 가장 상투적인 질문을 한가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나사로가 되고 싶습니까? 목사가 이렇게 질문을 하면 여러분은 목사가 원하는 대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사로가 되고 싶다하시는 분들은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하는 분들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도 저도 드신 분들 계십니까? 제가 분들을 위해 번째 답을 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자로 죽어서는 나사로로 살고 싶다.”

이제 다시 여러분들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1번은 부자로 살기, 2번은 나사로로 살기, 3번은 세상에서는 부자로 죽어서는 나사로로 살기 여러분은 번을 원하십니까?

 

오늘날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이상한 기독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신학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번영신학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밖에 없는 이유는 오늘 여러분들이 원하는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부자 죽어서는 나사로.

이에 대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선택은 하나(There is just one choice).

 

제가 어렸을 , 금성(LG) 광고 문구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 한다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오늘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선택을 이야기 하자면, “순간의 선택이 영생과 죽음을 좌우 합니다라고 해야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보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청년은 근심 하면서 자리를 떠나갑니다. 성경은 청년이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은 세상에서의 부자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거지 삭개오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 등장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바로 삭개오입니다.

성경이 설명하는 삭개오는 이런 사람입니다.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의 직업은 세리였고 그의 재물 수준은 부자였다고 합니다. 재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삭개오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 삭개오의 선택은 자기 것을 포기 하고 거지가 되기로 작정한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 하시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의 기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6:24

사람이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우리에게 먼저 생각 봐야 것은 주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선택은 내가 하지만 결과로 있는 것은 누가 나의 주인인가?” 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선택이 우리에게 다시금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결과에 따라 나는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재물을 선택한다면 나는 재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재물에 대해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말로는 재물이라고 번역 재물 원어는 “mamonas”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재물 의미이지만, 단어가 가지는 다른 본질적 의미는 재물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혹은 재물을 우리의 신으로 섬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의 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생각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잘못 오해 하시면 헌금을 많이 하라!” 속된 설교로 이해 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진심으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도전 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는 물질 앞에서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다 나는 물질 앞에서 강하다. 하실 있습니까? 요즘 세상에 우리 대부분은 물질 앞에서 무력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닌 하고 살아갑니다.

 

제가 이렇게 묻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원하는 만큼의 물질이 생긴다면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물질로 완전히 100%만족 하실 같습니까? 생각에는 아마 조금 라고 하는 말을 하게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성 만족이라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는 부자로 천국에 가서는 나사로로 살고 싶다 대답 하셨습니다.

말이 가지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내가 물질 앞에서 약합니다.”라는 아닐까요?

어쨌든 우리가 정말 신앙을 제대로 가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기 원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선택은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던 혹은 물질을 선택하던 선택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선택은 가지라고요? 한가지입니다. 기억 하시고 한가지 선택-하나님을 바르게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선택의 기회는 지금(right now)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선택은 가지라고 한다면, 기회는 바로 지금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말아야 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어떤 분들은 세상을 사는 동안 마음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믿어서 구원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러분은 그것이 가능 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제가 약해 보입니까? 건강해 보입니까? 건강해 보이시지요? 그런데 저는 8년전 어느 , 몸이 좋지 않아서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주간 동안 깨어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면 저는 자리에 없습니다. 후에 저는 삶을 다시 생각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말씀에서는 부자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없다고 하는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부자가 생각한 것은 자기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집으로 보내 달라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가족들이 믿게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자가 이렇게 부탁을 하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에 대해 부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0절입니다.

 

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합니다.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지금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합니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는 은혜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건방지게 행동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참으로 기구하게 사역을 왔습니다. 교회를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아 적도 있습니다. 헌금을 돌려 달라고 하는 상황도 경험 보았습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묻지요.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떤 선택이었습니까? 말씀을 따를 것인가? 말것인가? 선택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는 가지였습니까? 가지였습니다. “따르던가 따르던가…” 그런데 결정에 많은 시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럼 다음 말씀은 하나님을 믿을 준비가 분들에게는 복음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다음의 말씀은 재앙이 지도 모르겠습니다. 31절의 말씀을 먼저 봅니다.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여기 모세와 선지자는 누구를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까? 구약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예수님이 설명하시는 이유는 복음 설명 하시기 위함인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누가복음 16:16절을 다시 읽습니다.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 내용상으로는 구약을 말하고 있다면, 구약은 세례요한에서 끝이 났고, 이어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전파되고 침입한다고 말씀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구약은 필요 없고 신약만 성경이라는 식으로 이해 하시면 안됩니다. 말씀은 율법과 은혜에 관한 말씀입니다.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으면 이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바라고 선택해야 함을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은 아니겠는가?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면, 당연히 우리는 복음, 하나님의 은혜를 선택 해야 한다는 것을 있습니다. 누구도 지옥에 가기 위해 부자의 삶을 선택할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복음을 선택하는 시기는 우리가 뒤로 미룰 있는 일이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가도 믿지 않을 아니라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를 얻을 없다고 말씀 합니다.

여기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믿습니까? 솔직히 대답을 못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자입니까? 나사로입니까?

 

나는 부자인가? 거지 나사로인가?

제가 오늘 여러분께 드린 말씀은 가지입니다. 가지는 우리가 선택 있는 것은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가지는 선택을 나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분에서 우리가 한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것은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부자입니까? 나사로입니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나사로 혹은 나사로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나는 부자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자라고 하는 말은 “prousios”라는 단어인데, 단어를 계시록에서는 이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2:9

내가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말씀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인정 하시기에 부자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단어가 사용 , 다른 보겠습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말씀은 스스로 부자라고 하지만, 정작 가난하고 벗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적으로 가난한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세상에서는 부자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난한 부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 모양을 사람들의 공통점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이 우리에게 가난하게 살아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가난이 뭔지 생각해 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난이 복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언제요?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상관 없는 심령의 가난 말씀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심령 마음으로 해석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 하는 심령 “pnumati”, “”, 성령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가난 “proxos”라는 단어인데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는 거지 나사로 거지라고 표현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거지가 구걸하듯 성령을 갈망하며 구하는 것을 말하며 이런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오늘 말씀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내가 거지인지 부자인지 알기 알기 위해서는 나에게 성령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지 , 내가 혹은 어떤 사람이 성령을 사모 하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로마서 3:20 말씀입니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서 생각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삶의 기준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 혹시 이렇게 생각 하십니까?

 

그러면 다음의 말씀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의인이라 칭하는 의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럼 여기서 가지 , 베드로가 물에 빠져가던 장면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에 빠집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도 아시지요?

믿음이 적은” “oligopiste”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쉽사리 믿지 않는…” 의미입니다. 적은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우리는 의인이 없습니다. 행위로도 의인이 없지만,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되지 못합니다.

 

앞서 함께 보았던 로마서 3:20 말씀은 우리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의롭지 못함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의 죄성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 하신다고 하면 율법을 우리가 지키라는 의미일까요?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울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완성된 율법은 우리에게 법으로서 우리가 자격미달임을 알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있는 사람이 되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죄인임을 분명히 알게 , 우리는 비로서 가난한 자가 것이고 은혜를 구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것입니다.

 

다시 오늘 말씀의 주제로 돌아가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나사로입니까? 아니면 부자입니까?

저는 여러분의 재산이 얼마이든지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우리가 가진 재산을 통해 우리가 부자인가 아닌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속에 성령을 갈망하는 마음, 나를 믿음에 이르게 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갈망함이 나에게 있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상관 없이 나는 나사로입니다. 그러나 혹여 마음에 성령을 갈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내가 가진 것과 상관 없이 나는 부자입니다.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부자인지 나사로인지 생각하시면서 오늘의 말씀을 함께 생각 보십시오.

 

선택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입니까? 세상(부요함)입니까?

선택의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선택을 위해 지금 무엇보다 확실하게 알아야 것은, “나는 나사로 인가? 부자인가?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성령의 임재 하심을 갈망 함을 통해 나사로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