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101]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출애굽기 14:13)
우리가,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기 보다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만을 바라보다가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 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던 성경의 사건입니다. 엘리야가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아합왕에게 홍수가 날 것을 말하면서 산에서 내려가라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The seventh time the servant reported, "A cloud as small as a man's hand is rising from the sea." So Elijah said, "Go and tell Ahab, 'Hitch up your chariot and go down before the rain stops you.'"
정말 많은 시간, 저는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때, 엘리야의 믿음은 손 만한 구름을 비구름으로 보는 믿음이었다고 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씀도 아니지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새삼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보는가?”보다 먼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입니다. 믿음으로 손바닥 만한 구름을 보기 전에 과연 내게 그런 구름을 볼 믿음의 눈이 있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런데 곁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같이 그곳에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가장 먼저 하늘을 보던 그 사람이 재채기를 하더니 먼저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지나던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같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출애굽기 14:13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다가 앞은 홍해로 가로 막히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인들이 쫓아오는 상황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Moses answered the people, "Do not be afraid. Stand firm and you will see the deliverance the LORD will bring you today. The Egyptians you see today you will never see again.
이 말씀은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앞에 보여지는 장애물 보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로만 쉽습니다. 정작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앞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뒤에서는 적군이 나를 죽이려 따라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이것이 가능 할까요?
첫째로, 은혜로 보아야 보입니다
은혜로 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은혜의 눈은 하나님의 눈”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I counsel you to buy from me gold refined in the fire, so you can become rich; and white clothes to wear, so you can cover your shameful nakedness; and salve to put on your eyes, so you can see.
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 해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라오디게아 교회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 절, 17절입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You say,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But you do not realize that you are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를 부자, 부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진실은 곤고한 자, 가련한 자, 가난한 자, 눈먼 자 그리고 벌거벗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는데, 라오디게아 교회 자신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안약”을 사서 발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너는 세상을 보기 전에 너 자신을 보고 알아야 하지 않겠니?”
여기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사야 할 안약이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이 “안약”을 “은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돈을 주고 사는 약이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은 “은혜”의 약이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봐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도 될 것은 보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은혜”가 있으면 봐야 할 것은, 보게 하십니다. 창세기 2:25에 보면,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they felt no shame.
저들이 벗었으나 서로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끄럽게 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타락한 후의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나무 뒤에 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He answered, "I heard you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so I hid."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자신이 벗은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의 행동은 나무 뒤에 숨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했어야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함으로 은혜를 입는 것이었는데, 그가 본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이 벗은 것, 죄의 모습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로 가서 보면, 이 부분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을 사서 보라고 하십니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을 보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약을 “사서” 바르고 제대로 된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은혜의 눈을 갖기 원한다면, 얼마를 내면 그런 은혜의 눈을 살 수 있을까요? 과연 가능할까요?
얼마 전에,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에서는 우주 왕복선 “크루 드래곤”을 우주 정거장에 보내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부자들은 지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우주로 여행을 할 것입니다. 그 경비는 대략 30만불 정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주를 관광하려면 얼마정도면 될까요? 3억불? 우주를 보는 것은 가능할까요?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안약을 사여 한다면, 과연 얼마를 내면 그런 약을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안약”이 필요한데, 그 방법은 “은혜”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속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이 죄의 문제는 은혜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손바닥 만한 구름을 비구름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구름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죄의 눈은 세상을 하나님보다 두렵게 보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은혜의 눈을 갖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앞서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먼저 가나안에 보내어 내부 사정을 살펴보게 합니다. 그리고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모세와 백성 앞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합니다.
민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And they spread among the Israelites a bad report about the land they had explored. They said, "The land we explored devours those living in it. All the people we saw there are of great size.
그런데 같은 땅을 보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조금 다른 보고를 합니다.
민14:8-9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If the LORD is pleased with us, he will lead us into that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nd will give it to us. Only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be afraid of the people of the land, because we will swallow them up. Their protection is gone, but the LORD is with us. Do not be afraid of them."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에 의하면, 10사람의 정탐꾼이 보고한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땅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먹이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눈으로 보면 두려움의 존재가 은혜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단순히 먹이감에 불과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홍해로 앞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Moses answered the people, "Do not be afraid. Stand firm and you will see the deliverance the LORD will bring you today. The Egyptians you see today you will never see again.
모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죄의 눈으로 보지 않고 은혜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엘리사선지자가 도단이라는 성에 있을 때,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포위하고 사람이 성에서 나올 수 없게 합니다. 그 둘러싼 아람 군사들을 보고 엘리사의 종이었던 게하시가 두려워합니다. 이를 보고,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한 후, 눈을 떠서 밖을 보라고 합니다.
왕하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And Elisha prayed, "O LORD, open his eyes so he may see." Then the LORD opened the servant's eyes, and he looked and saw the hills full of horses and chariots of fire all around Elisha.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보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없고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 대신에 문제와 어려움만 보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사도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을 하다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는 도망하지 않고 남아있음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받게 합니다. 이것이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 은혜의 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거대 질병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각 나라의 문제로 끝났던 병이 이제는 전 세계의 병이 되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사태가 수습되고 난 후,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는 교회 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시대가 올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편한 신앙생활 하도록 이런 전염병을 주신 것일까요? 아니면, 이런 속에서 우리 스스로 믿음 지키는 법을 알게 하시는 중일까요?
보여지는 fact보다 우리가 봐야 하는 God’s will(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내 앞의 어려움을 보고 있습니까? 만약 나에게 두려움의 일들만 보여지면 우리는 지금 은혜의 눈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심으로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승리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자여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기(은혜의 눈을 갖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내가 앞을 볼 수 없다고 하고, 앞을 보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방법은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 대가를 치루는 것입니다. 다시 계시록 3장 말씀으로 돌아가서 봅니다.
계3:18b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and salve to put on your eyes, so you can see.
안약을 사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설교가들이 이 구절에서 “안약”에 관심을 많이 두고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사서”에 둔다면 말씀의 내용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영적인 일을 우리가 안약을 사서 바르면 보일까요? 그런 안약은 얼마나 할까요? 혹시 부자청년처럼 전 재산을 달라고 하면 돈이 아까워서 안약을 사지 못하진 않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산다”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Keep watch over yourselves and all the flock of which the Holy Spirit has made you overseers. Be shepherds of the church of God, which he bought with his own blood.
예수님은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계급장을 보고 있습니다. 집사, 권사, 장로 심지어 목사. 이것이 세상의 계급장처럼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피 흘림의 대가를 치뤄야 하는데, 피 흘림은 커녕 계급장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탄은 우리를 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우리는 신앙의 본질이 아닌 계급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코로나 19 덕분에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 그렇게 생각 하게 되었을까요? 코로나 이후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는 않을까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설교 한 편을 듣고 숙제 하듯이 예배를 드리고 자기 스스로 편안함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주 자주 사용하는 말씀 중에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이 말씀 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찾으시느니라!” 이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오늘 한국의 기독교인 숫자는 1000만이라고 합니다. 4명 중의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너무 욕을 많이 먹는 그런 종교가 되었습니다. “찾으시느니라!” 이 말이 가지는 강한 떨림이 여러분의 가슴에 있습니까? 지금 나의 예배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입니다.
이 말을 다시 바꾸어 해 봅니다. 과연 나의 믿음은, 나의 예배는 혹은 나의 기도는 그리고 나의 찬양과 나의 삶은 하나님이 받으시고자 하는 그런 모습인가? 를 스스로 생각하고 돌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대가로 치루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은혜 안에서 살기 위해서 무엇을 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1990년 9월 어느 날, 케냐를 향해 떠났던 백영심간호사라는 분은 아직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모 재단으로부터 상금으로 받은 4억원까지 아프리카에서 학교 및 병원 설립에 투자하고 자신은 현재까지 짐바브웨에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삶이 사치하는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의 삶은 지나친 사치가 아닐까?”
말씀 정리 합니다.
우린 누구나 이런 저런 삶 속의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이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가 생각 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왜?”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은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우리 믿음이 약해서 일 수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가 해결되지 않은 부분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은혜와 죄를 한 그릇에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팔아 은혜의 눈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파는 것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린 말씀을 읽고, 외우고 공부하고, 묵상하며 우리 은혜를 지키고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우리가 지키려고 하지 않는 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은혜를 간직하려는 이 노력은 은혜를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은혜의 눈으로 보니 무엇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보이십니까? 이 은혜의 눈을 꼭 간직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