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생명의 삶
돌아설 용기가 있는가?
no turning back
2012. 2. 11. 01:45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가장 힘든 것이 있었다면 말씀을 아는 만큼 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다. 오늘 많은 신앙인(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안타까운 것은 아는 것도 좋지만 아는 만큼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한 성도님을 만났다. 26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던 분인데 그 교회를 떠나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인인구 5000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그 분을 만났을 때, 그의 말 속에서 목회자들에 대한 아픔(분노에 가까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너무 유약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목회자가 수퍼맨이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는데, 왜 성도들을 스스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도 하지 않는냐는 것이었다.
오늘 생명의 삶의 말씀은 로마서 16:17-27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보면 잘못된 가르침에서 돌아서라고 한다. 가르치는 자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서 성도들은 깨닫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
필자는 오늘 성도들에게 이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이해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 속에 과학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으로도 증명 할 수 없는 일들이 성경에는 너무 많이 있다. 어떤 분은 그래서 성경은 비과학적이라고 표현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비과학적이 아닌 초과학 적인 책이 성경이다.
문제는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 하지 않는데서 시작 한다. 목사들은 나름대로 성경을 읽으라고 묵상 하라고 전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성도들은 자신이 읽고 묵상한 성경이 아닌 들은 풍월로 성경 지식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신나는 것은 목회자들이다. 성도들이 성경을 잘 알지 못하기에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게 되어있다. 즉 성도들의 괴가 열리지 않는 한 목회자들이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전횡은 계속 되어 갈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씀은 마태복음 7장의 좁은길에 대한 말씀이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 바울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아닌 것에서 돌아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아담과 하와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하와 때문에 그리고 뱀 때문에라고 외치는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변명을 보면 알 수 있다. 과연 목회자들이 성도를 잘못 된 길로 이끈 것인가? 성도들이 목회자가 잘못된 길로 가도록 부추킨 적은 없는가?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목회자라면 혹은 성도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돌아설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묵상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마음 아픈 것은 성도들이 너무 성경에 대해 무지 하다는 것과, 그런 성도들을 향해 목회자들은 잘못 된 목음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질문 해 본다.
"너는 돌아설 수 있겠니?"
며칠 전에 한 성도님을 만났다. 26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던 분인데 그 교회를 떠나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인인구 5000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그 분을 만났을 때, 그의 말 속에서 목회자들에 대한 아픔(분노에 가까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너무 유약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목회자가 수퍼맨이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는데, 왜 성도들을 스스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도 하지 않는냐는 것이었다.
오늘 생명의 삶의 말씀은 로마서 16:17-27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보면 잘못된 가르침에서 돌아서라고 한다. 가르치는 자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서 성도들은 깨닫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
필자는 오늘 성도들에게 이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이해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 속에 과학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으로도 증명 할 수 없는 일들이 성경에는 너무 많이 있다. 어떤 분은 그래서 성경은 비과학적이라고 표현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비과학적이 아닌 초과학 적인 책이 성경이다.
문제는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 하지 않는데서 시작 한다. 목사들은 나름대로 성경을 읽으라고 묵상 하라고 전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성도들은 자신이 읽고 묵상한 성경이 아닌 들은 풍월로 성경 지식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신나는 것은 목회자들이다. 성도들이 성경을 잘 알지 못하기에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게 되어있다. 즉 성도들의 괴가 열리지 않는 한 목회자들이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전횡은 계속 되어 갈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씀은 마태복음 7장의 좁은길에 대한 말씀이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 바울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아닌 것에서 돌아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아담과 하와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하와 때문에 그리고 뱀 때문에라고 외치는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변명을 보면 알 수 있다. 과연 목회자들이 성도를 잘못 된 길로 이끈 것인가? 성도들이 목회자가 잘못된 길로 가도록 부추킨 적은 없는가?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목회자라면 혹은 성도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돌아설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묵상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마음 아픈 것은 성도들이 너무 성경에 대해 무지 하다는 것과, 그런 성도들을 향해 목회자들은 잘못 된 목음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질문 해 본다.
"너는 돌아설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