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글

‘저라는..."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no turning back 2014. 3. 2. 17:09



 

동계 올림픽 중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던 일 중의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김연아선수가 선수로서는 마지막 인터뷰라고 할 수 있는 인터뷰자리에서 자신을 메달리스트가 아닌 스케이트선수 김연아로 기억 해 주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물론 수많은 선수들이 메달을 땄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그런 중에 김연아선수는 한국에서는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피겨스케이트부분에 분명한 한 획을 그은 선수였기에 그의 소박한 꿈은 다소 의외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라는 선수라고 하는 말 속에 정말 많은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안에서는 편파판정까지도 경기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모양새입니다. 아이들이 운동 할 때, 경기 참관을 위해서 가면 심판의 편파판정이 생각보다 거셉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하는 경기임에도 경찰이 동원되어 분위기를 억지로 진정 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는 김연아선수의 모습 속에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자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이로운 대범함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김연아선수는 그저 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 해 달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 했기에 결과가 어떠하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과연 나는 가지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습니다. 나는 사역에 최선을 다 했기에 그 결과를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하는 부분입니다.

대 도시를 버리고 내쉬빌에 오면서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사역의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고 원망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정 하고 받아들이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기에 김연아 선수의 한 마디는 정말 부럽습니다. 제가 이 말을 패러디한다면 저란 목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 해 주시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죽을 만큼의 사역을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답답함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답답함 너머의 이 부러움은 무엇일까요?김연아 선수보다 오래 살았지만, 이제야 그녀가 하는 말저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럽습니다. 이제 저도 저라는...”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